2016.07.13
_김재희
시몽동의 인간-기계 앙상블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존재론적 생성의 퍼텐셜을 발현시키고 소통시키면서 집단적 삶의 새로운 양식을 발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것을 떠받치는 제도들이 대중 소비와 테크노크라트적 경영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기를 강요하고 있는 오늘날, 기계들과 더불어 진화하고자 하는 우리 안의 이 혁명적 힘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적 해체 방법을 시몽동의 기술철학 안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가령, 시몽동은 발명 주체로서 기술공학자들의 혁명적 기능을 강조했지만, 오늘날 과연 그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을 넘어선 기술적 활동이 자본과 갖는 관계에 대한 분석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라투르는 사물들과 그것들의 대변인들이 공적 토의와 협상의 요구에 들어올 수 있도록 대의 민주주의를 재구성하고 우리의 공적 삶을 재조직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안하는 사물의 의회와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사물지향적 민주주의는 인간/비인간, 사실/가치, 과학/정치 등 근대적 구분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현대의 하이브리드적 사안들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철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고 시사점이 많다. 그러나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인 멀티우주의 설립자들이 다함께 참석하는 하이브리드 포럼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나 대변인 기능과 대의제에 대한 신뢰 부족, 끊임없는 협상과 결정불가능성의 실천력 부재 등은 사실상 그의 제안을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에 그치게 할 수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개방을 촉진하는 시몽동과 라투르의 낙관적인 기술-정치적 지향은, 그러나 경제적 풍요를 목표로 기술 혁신을 부의 축적으로 연동시키고자 하는 오늘날의 기술낙관주의와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몽동과 라투르는 무엇보다 정보기술의 역량을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정치적 평등주의와 인간-비인간 하이브리드 사회의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가능성으로 연결시킨다. 이들의 기술-정치학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위계를 유지하는 근대적 휴머니즘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토대를 해체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는 포스트-휴먼 사회의 지향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107회 콜로키움에서 김재희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