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0 |
_김수자
한국에서 전통시대의 ‘역사’ 개념은 지나간 사건의 선악과 시비를 포폄하여 현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하여 과거 사실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조선 전기 이후 역사 개념에는 정통의 흐름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역사 개념은 개항이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역사’ 개념이 본국사 중심으로 바뀌고 역사라는 번역어가 도입되었다. 1900년경 까지는 전통시대의 사기(史記)가 ‘역사’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역사라는 용어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 ‘과거 및 현실 전체’라는 의미의 역사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며, 1908년경에 이르러 ‘국가 즉 국민국가의 역사’, ‘민족의 역사’라는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작업의 선두에 선 역사학자들이 신채호, 박은식 등이라 할 수 있다.
본 발표는 한국 근대역사학의 문을 연 신채호의 역사인식, 역사서술과 관련된 것이다. 신채호가 역사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이후인 1905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08년 발표된 신채호의 『독사신론(讀史新論)』 및 역사관련 사론은 한국 근대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의 시발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받고 있다. 독사신론 등이 근대적인 역사학 성립의 기점으로 간주되는 것은 중세적인 유교사관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제기하였다는 점과 서구의 근대적인 역사관 즉 민족주의적이며, 발전론적 역사관을 수용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신채호의 한국역사의 내용, 특히 고대사 연구 및 서술에 있어서는 이전의 사서들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탐독 과정에서 신채호는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나 조선시대 사서를 편찬한 유학자들을 사대주의자로 평가하며 강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대해서 특히 한백겸(동국지리지), 안정복(동사강목), 정약용(아방강역고), 이종휘(동사) 등에 대해서는 “이들에 의해서 비로소 이후의 역사와 사상을 이끌었다”고 적고 있을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실학자 중에서도 신채호는 독립운동의 와중에도 항상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대해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채호의 『독사신론』과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중심으로 신채호가 안정복의 지리고증학적 방법과 실증, 사료고증의 역사방법론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86회 콜로키움에서 김수자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