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7 |
_박인원
잔다르크는 지난 6백년 동안 문학, 오페라, 영화, 그리고 만화와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형상화되어 온 인물이자 오늘날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단적 정체성에 호소하기 위해 호명되는 글로컬 아이콘이다. ‘조국’에 대한 의식이 아직 부재했던 역사적 상황에서 잔다르크는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었으며 애국주의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종교개혁까지 선취한 인물이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국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새롭게 부각되면서 국민적 신화 및 집단적 표상으로서 잔다르크의 기능이 여러 관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연구는 애국심 양성이 절실한 과제로 인식되었던 정치적·역사적 상황에서 잔다르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오를레앙의 처녀』(1801)와 근대계몽기 지식인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의 『애국부인전』(1907)을 같이 읽어보고자 했다. 두 작품은 백년의 시간적 거리를 두고 독일과 한국에서 각각 처음으로 잔다르크라는 여성영웅을 소재로 삼았다. 『오를레앙의 처녀』는 극작가로서 쉴러의 최대 성공작이었으며 19세기 후반 미슐레를 비롯한 낭만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민중영웅으로 승화된 잔다르크 숭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작품이다. 일본과 중국을 거쳐서 번역·개작된 『애국부인전』은 장지연이 애국계몽운동, 여성교육의 일환으로 기획한 작품으로 그 당시 대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순한글 작품이다.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조국, 민족, 국가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영웅’이 요구된다. 잔다르크가 어떤 방식으로 쉴러와 장지연에 의해 그 시대적 맥락과 결부되어 애국심을 고취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각색되는지, 그러면서도 어떻게 동시에 보수적인 성 담론을 재생산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85회 콜로키움에서 박인원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