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2
탈경계 문학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주변부 문학의 초국가적 역동성을 살펴보고자 “아메리카 자유기획 서사와 역사생산”이라는 제목으로 카리브계 출신이면서 각각 영국과 미국에 이주 혹은 망명하여 작가 활동을 한 조지 래밍(George Lamming)과 미셀 클리프(Michelle Cliff)의 『망명의 즐거움』(The Pleasures of Exile)과 미셀 클리프(Michelle Cliff)의 『자유 기획』(Free Enterprise)을 분석하였다. 각각 카리브계 영국문학 혹은 카리브계 미국문학이라는 소수민족문학 범주 속에 속하는 이 두 텍스트를 중심으로 주변부 인들의 역사와 목소리를 지우고 왜곡시키는 이야기들 속의 권력과 침묵들을 드러내고 공식적 역사 서술에서 지워지거나 침묵된 사건들, 자유를 확보하려는 해방투쟁에 삶과 목숨을 걸었지만 역사에 어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경험들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서사전략들을 살펴본다. 조지 래밍의 에세이들은 제국의 중심에 들어간 식민지출신 유색인 작가로서의 관점으로 자신의 경험과 의식 자체를 일관된 숙고의 대상으로 삼아 영국과 카리브해, 미국과 아프리카의 여러 대륙의 문화와 텍스트들을 여러 문화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포스트)식민지인의 눈으로 재해석하고 제국(인)과 식민지(인)를 다시 읽는다. 미셀 클리프의 포스트모던적 서사는 19세기 미국의 공식적 기록과 재현과 이야기에 삭제되어있는 주변화된 타자들, 흑과 백의 여성들, 카리브해 섬들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흑인노예들, 아메리카 대륙 주변 섬들의 식민화된 원주민들, 오염된 존재들로 간주되어 세상에서 격리된 나환자들 등 다양한 주변인들의 혼종적이고 초국가적인 경험과 열망에 목소리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역사서사들 속의 침묵이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메타적으로 드러낸다.
래밍과 클리프 둘 다 카사노바가 주장하는 세계문학의 장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미학적으로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변부 카리브해 지역 출신 작가들이다. 이주국인 영국과 미국에서 이들이 생산하는 텍스트들은 국민문학의 제단에 오르지 못하는 소수민족문학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가적 경계선 내부에서 소수민족문학에 ‘불과한’ 이 텍스트들 안에 담겨있는 내용들과 관점들은 영국, 미국, 혹은 카리브 도서국가의 국가적, 민족적, 국민적 경계선 안에 제약될 수 없는 넓은 시공간적 전망을 담고 있다. 많은 주변화된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어 온 경험들의 핵심적 요소를 포착하고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는 “현 상태를 인간적으로 참아낼 수 없다는 자각”과 “인간 역사의 합리적이지도 않고 합리화할 수도 없는 진로”를 바꾸어보려는 열망과 행위를 찾아내고 있으며, 대서양을 둘러싼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북 아메리카 대륙들이 역사적으로 활발하게 맺어온 복합적인 관계들과 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 섬들의 원주민들이 겪은 식민화와 그에 저항하는 다양한 자유 기획들을 가시화한다. 이런 점에서 두 텍스트는 대서양문학 혹은 아메리카 문학이라는 이름이 더 적합해 보인다. 이런 텍스트들을 단지 소수민족문학으로만 범주화하거나 세계문학 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문학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주변부의 “작은 문학”(small literature)으로 간과하기보다는, 그 역동성과 보편성을 좀더 세심하게 살피는 새로운 ‘보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71회 콜로키움에서 이경란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에 대한 서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