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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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9029
일 자
17.10.19
조회수
1143
글쓴이
강지연
유럽의 'K-pop' 열풍과 문화혼종성 (이수안)

2012.06.19


최근 독일의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니에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은 전통적으로 묵직한 문화비평을 게재해왔던 란에, 한국의 K-pop 열풍에 대해 비평하는 기사를 “Das ist die perfekte Welle(이것은 완벽한 물결이다)”라는 제목으로 내보냈다. 언론으로서의 성향 자체가, 같은 도시에서 발간되는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에 비해 보수 성향을 보이면서도 권위있는 문예비평을 게재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신문의 문예란이라서 한국의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K-pop 열풍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만큼 K-pop 열풍이 독일사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강한 반향을 일으킨 사실에 대한 입증이면서 동시에 독일의 문화계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물결(Welle)’이란 ‘한류(Koreanische Welle;  Hallyu)’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용어로서 최근 독일 뿐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에 기존의 아시아 각국에서와 같이 한류가 상륙하여 유행처럼 여러 가지 문화현상을 동반하고 있는 상황을 가장 완벽한 상태의 물결이 크게 몰아닥친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한류’가 대체로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이제 동남아시아로 번지게 된 한국 대중문화의 확산을 통틀어 일컫는 것이라면 K-pop은 한류의 한 지류로서 한국의 대중가요, 특히 아이돌 그룹 중심의 특정한 양식의 대중가요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팝음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 불고 있는 K-pop 열풍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전지구적 문화혼종화는 끊임없이 교차하고 혼합하고 착종하는 유동적인 양식을 통해 근대성이 표방하던 구체적인 사회적 범주들 간의 명확한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근대성과 탈근대성의 경계지대에서 모든 종류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론적 의미로 문화혼종화 과정이 주목받고 있는 배경이다. 지구화 시대의 문화적 파동은 결국 글로벌 문화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지구화의 핵심적인 효과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이 파동은 결국 이주민에 의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문화접변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이 과정에서 이주민 사회의 문화혼종성이 주요 논제로 부상하였고 지난 10여년 간의 포스트콜로니얼 문화이론과 문화번역의 담론 형성은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이주와 더불어 급부상한 논제인 ‘문화적 지구화’는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문화의 초국적 흐름 속에 변화하는 문화적 정체성의 측면에서 글로벌과 로컬의 구분을 사실상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서구와 비서구라는 지역적이고도 문화적인 범주가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 공유되는 대중문화를 통해 서로 혼합되거나 융합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사례는 대중음악과 영화적 재현, 뮤지컬공연 등 대중문화산업의 전반적인 문화적 실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연구자가 기획하고 있는 혼종 문화의 다양한 양상과 형성 방식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문화의 혼종화 과정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구체적인 문화 실천 속에서 어떻게 설명력을 갖는지 성찰해보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즉 그동안 주로 포스트콜로니얼 문화이론을 중심으로 연구되어왔던 혼종성과 혼종화 과정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중심으로 하고, 문화제국주의 논의, 글로벌/로컬의 문화적 역학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론적으로 검토한 후 이 이론적 논의들에 대해서 한국의 대중문화산업, 특히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K-pop 열풍의 현상을 하나의 사례로 하여 설명력이 있는지 검토해보려 한다.

그동안 K-pop을 혼종성 논의에 의거하여 분석한 연구들은 대체로 글로벌한 팝의 로컬에서의 수용의 과정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서구중심의 팝음악의 아시아적 수용에 대해 연구했으며(신현준, 2005; 박현주, 2006), 보다 구체적으로 서구적 음악적 스타일을 받아들여 변형한 문화변환의 차원에서 ‘외국스타일의 전유’, ‘사회․문화적 기원을 고려하지 않는 음악 사운드와 음악 구조의 차용’등으로 혼종화의 초기 단계인 모방(mimicry)으로 평가(하워드, 2002)하고 있다. 한편 팝이 글로벌 차원에서 로컬 차원으로 변용되고, 이것이 다시 글로벌로 간다고 보는 관점을 유지한 연구(제이미 리, 2004)도 수용이라는 차원에서 K-pop의 혼종성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로컬에서 다시 밖으로 나가는 글로벌이라는 지역적 범주가 사실은 주로 일본을 지칭하고 있고, 기껏해야 중국 정도가 추가되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 논문들은 최근의 K-pop처럼 동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과 팝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영국, 남미, 러시아, 호주 등 말 그대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논문에서는 바로 이점에 주목하면서 최근의 K-pop 열풍이, 제이미 리가 가리키던 ‘아시아 역내 문화교통(intra-asia cultural traffic)’ 혹은 ‘아시아 횡단적 교통(trans-asian cultural traffic)’의 차원을 넘어서서 글로벌 차원, 즉 전 세계에서 향유되는 점에서 이전의 K-pop의 혼종양상과는 다른, 새로운 혼종화 방식이 발견된다고 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판단하였다. 우선 유럽이나 미주, 남미 등지에서 주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K-pop의 주역들이 아이돌 그룹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이 K-pop 열풍의 진원지가 된 배경에는 두 가지 층위의 요소가 작동한다. 첫째, 문화생산자의 입장으로, 고도로 기획된 문화상품으로서의 층위, 두 번 째, 문화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예기치 못하게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요소의 배합으로 인한 혼종문화적 측면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K-pop의 문화혼종적 요소는 K-pop 열풍이라는 결과를 놓고 거꾸로 유추하는 방식으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첫 번 째 층위에서 볼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K-pop에 대해 열광하는 유럽의 팬덤 현상에는 음악적 요소 외에도 한국의, 국민국가로서의 경제적 발전 상황이 작용하지는 않는지 조심스럽게 가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K-pop이라는 문화상품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음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그 음악을 담당하는 가수의 문화적 육체자본 관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에 뒤따르는 요소로 안무, 의상, 공연무대장치, 음악적 기술 등과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경영의 차원에서 관리하는 연예기획사의 자금력과 경영기술이 포함된다. 기획사에 의한 작곡, 안무 등이 지금의 K-pop 열풍을 금방 사그라들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자발적으로 결성된 개별 그룹이 하는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창의성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후크송 등 금방 식상할 수 있는 구성요소로 된 ‘모방적 팝’으로 과연 K-pop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이 논문에서는 K-pop 열풍을 통해 문화의 소통(inter-)과 횡단적(trans-) 교차가 빚어내는 혼종문화적 양상과 그 작용요소들이 무엇인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는 K-pop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아시아 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의 실체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진행될 것이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69회 콜로키움에서 이수안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에 대한 서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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