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5 |
_최진석
1960년대 영국에서 문화연구가 하나의 ‘학문’으로서 성립한 이래 문화연구의 대의와 방법론은 서구와 한국의 현실에서 수차례 소환되어 왔다. 화석화된 사회과학을 되살리기 위한 ‘보조제’로서,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원군’으로서 문화연구는 호출되었고, 그때마다 적절히 ‘처방’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연구는 항상 위기와 함께 했던 영역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애초부터 본질적인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지 않던 문화연구는 기성 분과들의 위기에 호출되는 과정에서 그것들과 일정 정도 혼성화의 과정을 겪었다. 그 결과, 지금 인문·사회과학의 상당한 영역들은 문화연구의 관점과 주제,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적 시점에서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그 본래적 문제설정은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두었나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잠정적인 답안은 부정적이다. 분과학문의 위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으며, 문화연구 역시 그 자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을 우리는 자주 마주치는 탓이다. 후자만을 일단 관점화한다면, ‘학문’의 레테르를 달고 대학과 ‘공존’하는 상황에서 문화연구 또한 제도의 포로가 되었다는 의혹은 마냥 풍문만이 아니다. 2014년 스튜어트 홀이 타계하면서 ‘역사적 문화연구’가 종언을 고했다는 현재의 시점에서, 문화연구는 제도와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문화연구’라는 레테르를 명시적으로 붙이고 있는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의 발표는 상기의 물음들에 대한 모범답안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다. 차라리 여기서는 차후에 내려질 답안들에 대한 시안을 구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문화연구의 성립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제도화와 위기의 문제, 문화연구에서 탈경계화란 어떤 것인지를 검토해 보는 일이다. 이로써 우리가 찾는 것은 문화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주의적 정의가 아니라, (역사적) 문화연구가 종언을 맞은 지금 문화연구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정세적인 진단이다. 그것은 푸코적 의미에서 계보학적 문제설정이며, 방법에 대한 탐구이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진단시험지로서, 먼저 서구 문화연구의 발생과 전개에 대해 논의한 다음, 한국에서 그것의 도입과 변형, 현황에 대해 살펴본 후, 결론에서 진단결과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98회 콜로키움에서 최진석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