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8 |
_오윤호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고 1882년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20년이 지나 고종 황제는 조선인들의 미국 이민을 허락하게 되면서, 조선인들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었다. 1902년과 1905년 사이에 걸쳐 약 7,500 명의 조선인이 하와이로 이주하면서, 한인이주사에 큰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에 비한다면, “1000여 명의 한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멕시코 유카탄 이민은 멕시코대표 이민 브로커와 한 일본 이민회사가 결탁하여, 사기극을 벌여 이루어진 단 한 차례에 그친 대규모 계약노동이민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와 한인 남미 이주사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던 시점에 김영하의『검은꽃』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조선인의 멕시코 이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출발점으로 그 사건에 연류된 다양한 근대 국가들(일본, 조선, 멕시코, 미국 등), 그 시민들, 문화들을 “허구적 삶”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김영하는 작가의 말에서 이자경의『한국인멕시코 이민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히고, 백종국의『멕시코 혁명사』를 통해 1910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혁명의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조선인이 멕시코로 노동 이주를 떠나게 되는 상황들, 조선이 식민지가 되어가는 과정과 멕시코에서 독재에 맞서 혁명이 일어나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배경, 조선인들끼리 마야 유적지에 새로운 신대한을 세우는 내용 등을 재현하며, 역사적 고증에 천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름이나 그들이 서로 연결되는 사건들은 허구적으로 구성되어 멕시코 노동 이주의 삶을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 역사서와 소설의 경계 혹은 그 장르적 혼종 속에서 이 소설은 독특한 탈경계적 특성을 갖게 된다. 강태진은 멕시코 최초 이민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예술작품 사이에 나타난 상호관계를 분석하며, 역사적 맥락보다 허구적 재현 속에서 ‘계급철폐와 새로운 계급의 형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작가들의 관심과 글쓰기 전략에 따라 허구적 재현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검은꽃』은 광활한 에네켄(용설란) 농장을 배경으로 멕시코 노동 이민 조선인 1세대들의 이주의 역사를 다루며 새로운 디아스포 문학 혹은 트랜스내셔널리즘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20세기 초 식민지를 경험했으며, 서구유럽 문학의 주변부에 위치한 제3세계문학인 한국소설이 그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화혼종의 양상과 근대 주체(디아스포라)가 국가를 경험하고 내면화하는 순간을 논의하려고 한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94회 콜로키움에서 오윤호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