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
_김경미
이 발표는 이옥(1760~1815)의 <백운필>을 대상으로 그 저작 동기와 서술 태도, 이옥의 의식 지향을 분석하고, 이를 19세기 지식인의 지식에 대한 태도 변화, 나아가 삶의 방식의 변화와 관련시켜 살펴본 것이다. <백운필>은 이옥이 살고 있던 남양 지역, 그가 살던 집 주위의 동식물을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로 분류하여 짤막하게 그 특징이나 성향, 명칭, 가격, 관련된 경험, 속담 등을 정리한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 형태는 본초학을 비롯한 백과전서적 저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백운필>이 이들 기록과 다른 것은 대상 동식물의 특성이나 심미적 특성뿐만 아니라 가격이나 상품성 등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운필>에서 이옥은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세계를 선택적으로 재현하면서 자신의 감정, 심미적 관심, 경제적 관심을 동시에 드러내지만, 이옥은 경제적 문제나 실용적인 면에 더 많은 관심을 드러낸다. 경제적 문제나 일상적인 것에 대한 이옥의 관심은 그 당시 문인 학자들이 생계나 생업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옥은 이들과 달리 선비로서의 자의식이나 유가적 의식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생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떤 채소를 심어 먹거리로 삼을지, 양계가 농가의 삶에 얼마나 유용한지, 어떤 꽃이 아름다운지, 어떤 풀이 약효가 있는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지식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옥은 서문에서 천문과 지리, 사람과 귀신, 성리와 문장, 석가와 노자 등 기존의 지식 체계에 속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이렇게 일상과 밀착된 지식을 정리했다. 이는 기존의 추상적이고 비일상적인 지식을 거부하고 구체적이고 경험적이며, 일상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지식을 재배치하려는 소산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근저에는 개인의 삶을 중심에 놓고자 하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개인적 삶에 대한 긍정적 의식은 각각의 존재가 갖는 고유함, 즉 개성을 인정하는 의식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개인 중심적 삶의 방식은 중심에서 이탈한 19세기 문인 학자들이 어떤 삶의 형식을 모색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101회 콜로키움에서 김경미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