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1
_김애령
1870년대 보급되기 시작한 ‘글쓰기 기계’인 타이프라이터는 여성적 기술로 자리매김 되었다. 타이프라이터의 보급과 더불어 사무노동은 급격히 여성화되었고 여성의 사회진출은 확대되었다. 독일의 매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타이프라이터라는 기술적 매체의 출현이 사회구조와 교육 담론에 영향을 미쳤고, 사무직의 여성화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글쓰기의 젠더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기록체계’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키틀러는 ‘기록체계 1900’에 속하는 타이프라이터가 19세기의 낭만주의적 시작(詩作, Dichtung)을 언어의 물질성에 더 많이 주목하는 문학(Literatur)으로 바꾸었으며, 그전까지 글쓰기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타자기가 “소위 여성 ‘해방’”을 촉진시켰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문제의식은 이와 같은 주장을 검토하면서 출발한다.
키틀러의 매체이론에서 ‘타이프라이터’는 독특한 존재론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매체이다. ‘기록체계 1900’에 속하는 다른 매체들인 축음기나 영화와 달리, 타이프라이터는 기계와 인간의 연결체로 기능하는 “도구와 기계의 중간물”이다. 이 같은 타이프라이터의 고유한 지위가 키틀러의 매체이론이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음성중심주의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좋은 분석 도구가 된다. 이 연구는 키틀러의 매체이론과 ‘글쓰기 기계’에 대한 분석을 비판적으로 추적하면서, 그의 소박한 매체 결정론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분석 관점이 더 보태져야 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기계와 유기체의 관계를 분리가 아닌 결합 및 연합의 관점에서 읽는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사이보그’ 개념이, 하나의 비판적‧보완적 이론을 구성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지 점검한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97회 콜로키움에서 김애령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