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2
_박인원
헤르마프로디티즘, 자웅동체, 양성구유, 반음양, 간성, 인터섹슈얼리티, 성적발달장애 등 남녀 양성의 특징을 한 몸에 지닌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무수히 많다. 오늘날 양성구유자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의학적으로는 불필요한 외과 수술과 호르몬으로 명확한 성을 부여하는 ‘치료법’은 1990년대 들어 인터섹스 운동을 통해 인권침해 문제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울리케 드래스너(Ulrike Draesner)의 소설 『지참금(Mitgift)』(2002)은 이같이 의학이 사회적 규범과 결부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의학을 통한 인식의 변화 가능성, 즉 젠더를 바라보는 우리의 지식을 수정, 변형시킬 수 있는 “게이트키퍼”로서의 의학에도 주목한다.
드래스너는 양성구유자의 몸을 낭만화 시키지 않으면서도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로서 부각시킬 수 있는 서사모델을 모색한다. 『지참금』은 양성구유자의 일인칭 시점에서 서술되는 여타 양성구유 텍스트들과 달리 모호한 성별을 지닌 몸이 어떻게 타인에 의해 비로소 양성구유자로 만들어지는가에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분법적 성규범이 양성구유자에게만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몸을 가진 이들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와 함께 드래스너는 의학 및 자연과학 담론을 서사전략으로 동원하여 다양한 성정체성을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90회 콜로키움에서 박인원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