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7
_김애령
르페브르(Henry Lefebvre)는 공간 연구의 개념들을 제시하면서 “공간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과 “재현 공간(representational spaces)”을 구분한다. “공간 재현”은 “개념화된 공간”, 과학자들, 도시 계획자들, 테크노크라트들, 엔지니어들의 공간을 의미한다. 반면 “재현 공간”은 연계된 이미지들과 상징들을 통해 “체험(lived) 공간”, 주민들과 이용자들의 공간, 몇몇 예술가들, 소수의 작가들과 철학자들의 공간을 말한다.(Lefebvre, 1991) 계획하고 설계하는 자들의 말끔히 구획된 도시는 그 안을 혼탁하게 채우는 몸들이 체험하며 살아가는 혼종화된 도시와 같지 않다.(그로스, 2012)
청계천의 복원은 ‘공간 재현’의 산물이다. 청계천 복원을 지지하고 기획한 공간 재현의 핵심어는 ‘생태 복원’이었다. 도심의 하천을 되살려냄으로써 도시 생태계를 회복한다는 기획이 이 공간 재현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2005년 10월 1일부터 다시 흐르기 시작한 청계천은 전기 모터에 의해 일정량의 물을 모아 소독하고 정화해서 흘려보내는 ‘기계’이다. 2년 3개월이 걸린 복원 공사는 총 5.84km 길이의 도로면을 제거하여 개천을 드러내고, 22개의 다리를 조성하면서 조경을 정비했다. 그러나 47년 만에 다시 열린 물길은 ‘자연적인’ 하천이 아니다.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깊이 40cm를 유지해야하고, 그를 위해 한강물과 지하수를 2급수로 정수해서 하루 12만 톤씩 순환시켜 물길을 유지한다. 순환 모터를 돌리는데 소요되는 연간 전기료만 10억 원(약 100만 달러)이다. 그 물길 안에는 (2012년 5월 현재, 총 24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고(변화근, 2013), 수변에는 (2008년 현재, 총 444종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김형국·구본학, 2010)
청계천이 회복했다고 주장하는 이 도심의 ‘자연’은 어떤 자연인가? 그것은 비판자들의 조롱처럼 “거세당한 자연”, “자연을 위조한 인공물”인가? 하루 12만 톤의 정수된 물을 순환시키는 모터를 장착한 청계천은 ‘기계’인가? 청계천의 수생 생태계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해러웨이(Haraway)를 따라, 청계천의 참갈겨니(Zacco koreanus)를 자연과 문화가 내파된 이후의 자연인 “자연TM”이라고 규정해야하지 않을까? 이 발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생태 복원”이라는 “공간 재현”의 개념과 복원된 “재현 공간” 청계천 사이의 간극이다. ‘포스트휴먼’ 논의가 이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나아가 포스트휴먼 담론이 이전의 ‘모던, 포스트모던’ 담론과는 달리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이 내파된, 오늘날의 도시 생태계를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보려 한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88회 콜로키움에서 김애령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