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5
_오영주
전대미문의 인간조건을 예고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 주체 개념에 대한 철학적 해체라는, 상이한 두 움직임이 만나는 지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육체의 문제가 놓여있다. 한편에는 인간과 컴퓨터를 동치관계로 간주하면서 포스트휴먼 주체에서 육체를 제거하려는 경향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포스트휴먼 주체란 휴머니즘이 함의한 순수 의식 주체를 넘어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셸 웰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에는 유전자의 우생학적 수정을 통해 복제한 서기 4000년대의 신인류, 포스트휴먼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포스트휴먼은 평온하나 기쁨 없는 삶을 살아간다. 더구나 소설은 화자인 포스트휴먼이 그 세계를 이탈하면서 끝난다. 본 연구는 『어느 섬의 가능성』에 등장하는 포스트휴먼이, 흔히 분석되어왔듯이, 유전공학에 의한 생물학적 ‘포스트’휴먼이라기보다 네크워크에 전방위로 접속된 ‘디지털’ 포스트휴먼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신인류의 이탈이 디지털 정보 기술 문명이 내포한 접촉의 부재, 절대적 고립, ‘육체 소멸’에 대한 문제 제기임을 분석했다. 이어 장-뤽 낭시의 ‘몸’에 관한 생각에 기대어,<마지막논평, 에필로그>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화자의 이탈 후의 여정이 잃어버린 몸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연구는 주인공이 이 여정에서 좌초한 이유를 규명해보고자 했다. 이는 소설이 지시하듯이 주인공이 ‘인간의 몸’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수정신으로서의 주체라는 서구 휴머니즘이 정립해온 주체 버전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밝혔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93회 콜로키움에서 오영주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