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2
_전혜숙
본 연구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력한 미술가들 중 한 사람인 여성미술가 이불(李昢, 1964년생)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에 걸쳐 만든 사이보그와 몬스터들을 통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표출된 그녀의 여성신체의 의미가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신체와 주체의 의미로 이행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이불이 만든 형상들 즉 예술적 재현을 다루는 본 연구는, 재현된 이미지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의 리얼리티와 연관된다는 생각 아래, 이불이 보여준 여성신체의 변화가 지금 이 시대의 삶, 담론, 텍스트, 주체, 그리고 실천적 경험 등을 통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미술사적인 문맥에서 볼 때 이불의 사이보그와 괴물들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우선, 그녀의 작업이 초기부터 모든 인위적 전통과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면서 이성을 내세운 권력을 무화하고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페미니즘적 사고의 유연성을 기반으로 작업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기계와 기술이 화두가 되는 바로 이 시대에 그녀의 작품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여성신체, 기계-몸(사이보그), 괴물(비인간)을 내세움으로써 사이버페미니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신체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셋째, 그녀의 여성 사이보그와 괴물형상들은 한국 미술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형상일 뿐 아니라 명확히 규명되는 존재들도 아니며, 그것들의 실체가 기존의 휴먼주체에 입각해 설명되지 않는다.
이에 본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는 이불의 작품에서 왜 여성 신체가 괴물(혹은 사이보그)로 귀결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의 맥락에서 그녀의 괴물이 사이보그와 더불어 어떤 문화적 재현의 정치학을 갖는가이다. 이를 위해 나는 서구 역사 안에서 계속 반복되어 온 괴물과 여성의 연관성을 살펴봄과 동시에, 최근(1990년대 이후)에 문화이론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괴물의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휴먼적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이불의 작업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
이불의 괴물과 사이보그 형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여성의 몸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사유방식과 재현 및 기술(記述)을 비판하고 남성적 텍스트와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온Feminist 이론들에 기대면서, 더 나아가 그것들이 포스트휴머니즘 담론 안에서 설명될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 여성과 기술과 신체의 관계는 Donna Haraway의「사이보그 선언문」이래로 Judy Wajcman, Sandra Harding, and Anne Marie Balsamo 같은 사이보그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통찰력 있게 다루어져왔다. 그들은 1990년대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상응하면서 사이버 공간과 정보 테크놀로지를 접하는 여성 몸의 변화와 인식론적이고 심리적인 변화에 주목해왔다. 본 연구는 그러한 견해들을 기반으로 하되, 여성신체와 기술의 관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재현의 문제를 포스트휴먼의 관점에서 다루어 온 Kim Toffoletti, Judith Halberstam and Ira Livingston, and Elaine L. Graham의 논점도 가져오고 있다.
위 글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93회 콜로키움에서 전혜숙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요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