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활동
글번호
12546207
일 자
17.10.19
조회수
719
글쓴이
강지연
현대미술 속의 신체변형과 포스트휴먼(전혜숙)

2012.04.12


우리는 지난 20여년동안 신체 변형을 재현하는 현대미술작품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목격해왔다이는 1980년대 포스트모던의 몸살을 앓던 정신분열적 문화현상들이 199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어인간중심 가치의 상실에 따른 자아의 해체와 재구성이 미술에서의 신체표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포스트모던 신체이미지들은 신체에 가해진 욕망의 시선(gaze)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해 임의적으로 절단되거나 접합됨으로써 유기적인 통일체로서의 몸에 대한 믿음을 거부해왔다신체 내부를 거대하게 확대함으로써 몸의 미시세계를 우주와 같은 거시세계에 합병시키고몸을 증식시키거나 분해할 뿐 아니라 일부분을 고립시키면서 서로 다른 부분들을 충돌시켰다이는 익숙한 것에서 낯설음을 발견하는 당시의 유행이기도 했다여기에 기계와 결합된 인간의 몸 혹은 새로운 생물체로서의 사이보그가 대안적 의미의 신체로 부상했으며그로테스크 세기말 현상이 가미된 유전자 변형과 기형인간의 모습이 고발되었다.

신체에 대한 이러한 표현들은 국가 주도의 각종 휴먼 프로젝트들과 생명과학기술에 의해 도출된 새롭고 낯선 인간의 모습과도 연관이 있다미국국립의학도서관이 주관하여 1995년경에 완성한 VHP(the Visible Human Project), 1990년 공식 출범해 인간의 단백질과 DNA의 서열을 모두 분석함으로서 인간의 유전정보를 밝히려고 했던 인간게놈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많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프로젝트들에 사용된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작품의 표현에 응용하였는데그들은 MRI(자기공명영상기술, Magnetic Resonance Imaging), CT(컴퓨터단층촬영, Computed Tomography),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방출 단층촬영등 영상의학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미지를 사용할 뿐 아니라 스캔장치에 내재한 의학적 시선을 비판적으로 그려냈으며유전자 이식과 조작을 통한 실제 실험결과를 인종과 혈통에 대한 수사학적 비판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지난 20여년간 열린 전시들에서도 이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1992년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가 조직해 유럽과 미국을 순회했던 포스트휴먼(Posthuman)》 전시와 1995년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렸던 낯선 신체(Foreign Body)전시가 초기의 대표적인 예로이 전시들은 프로스테시스(prosthesis)와 생명유전공학 기술들에 의해 변형된 신체 미술을 보여줌으로써 당시로서는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2005년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MASS MoCA)에서 열린 동물 되기(Becoming Animal) 라는 들뢰즈(G.Deleuze)식 제목의 전시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라 그들의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는 우리의 동료 피조물들에 대한 공감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진화론생명공학과 유전자 이식과 관련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이른바 포스트휴먼 미술의 세계를 열었다또한 2009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의학과 예술생명과 사랑을 위해 미래를 상상하기(Medicine and Art: Imagining a Future for Life and Love)》 전시는 인간 신체를 해부학적으로 탐구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부터 분자생물학의 DNA구조를 이용하는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기술(의학)과 예술이 만나는 장소로서의 인간의 몸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2010~2011년 겨울에 일본 동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변형(Transformation)》 전시 또한 모든 미디어를 통해 생물학적신화적 의미의 변형과디지털 기술에 의한 사이보그로의 변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체변형 및 변성의 모습들을 소개한 바 있다.

미술작품을 통해 표현된 인간신체의 변형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미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화종교문학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와 괴물 혹은 동식물로 변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시각화해왔다고대 이집트의 스핑크스로부터 그리스 신화의 메뒤사켄타우로스키메라 등에 대한 묘사들이나북구 르네상스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그린 혼성적 인간의 모습들특히 19세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20세기의 초현실주의에서 표현한 각종 하이브리드의 모습들은 미술가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즐겨 다루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이러한 신체변형을 이용한 서사는 최근 영화 및 컴퓨터 게임에서도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인간 외형의 변형은 아마도 실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미술 장치 중 하나일 것이다인간이 신체변형을 통해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서사에서 주인공들의 이행경험을 통해 묘사되었으며이때 인간존재와 다른 생명체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더구나 윤회의 개념을 수용하는 문화에서는 인간/비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타협지점즉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의 상호교환이 가능하게 수용되는 지점이 항상 존재해 왔다.

이와 같은 주제와 소재들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간의 무의식적인 것비이성이고 상상적적인 것혹은 종교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왔으나디지털 기술과 사이버네틱스그리고 생명과학기술이 인간 이해의 폭을 변화시키고 있는 지금/여기의’ 상황에서 그러한 주제는 포스트휴먼이라는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물론 전근대(premodern)적 변형이야기들과 현대의 포스트휴먼 변형은 오버랩 되면서도 차이를 보인다아르카익 혹은 고전적인 신체변형들에서는 인간이 우회를 거쳐 다시 인간의 지위로 되돌아가는 반면신체변형의 근대적 또는 포스트휴먼적인 묘사들은 이전으로 되돌아감이 없이 신체의 생물학적 혹은 기술적 요소들의 수용과 재조직화에 초점을 맞춘다즉 위반적인 흔적을 유지하면서 돌아감을 거부하는 언캐니한(uncanny) 종합을 보인다는 것이다그러므로 포스트휴먼 신체변형은 신체가 유전적으로외과적으로기계적으로 어떻게 변화되는가의 문제 뿐 아니라 그것이 결국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는가의 문제를 발생시킨다즉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된 신체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어떻게무엇을 위하여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 수도 있는 그 무엇인가로 변형되고 있는가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재현의 지점과 장치는 무엇이며그 지점에서 인간성의 본성은 무엇이라고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인가이러한 질문을 위해 포스트휴먼 관점 혹은 포스트휴먼 조건의 설정과 함께 현재 우리의 목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미술로 표현되고 있는 신체변형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논문은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 연구단 제66회 콜로키움에서 전혜숙 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의 일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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