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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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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이슈페이퍼] 전쟁은 왜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가 – 이란 사태와 돌봄의 존재론으로 다시 읽는 평화 (20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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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지 (아시아여성학센터)




시장의 언어로 감응되는 전쟁

2026년 2월 말, 미·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이 시작되었다고 보도되던 그날, 나는 CNN과 BBC 채널을 번갈아 돌려가며 놀란 마음을 이성적으로 다스리려 했다. 속보는 빠르게 쏟아졌고,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바로 든 생각. 3월 2일 주식 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창 불기둥을 뿜어내고 있던 코스피(KOSPI) 흐름에서 나도 자유롭지 않았다. 그렇게 밝아온 3월 2일 아침, 나는 다시 여느 아침처럼 경제방송을 틀고 시장 전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주식 앱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화면 속 숫자들이 전하는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시장은 빠르게 이 상황을 반영했다. 하늘길도 막히면서, 항공, 호텔, 여행 관련 주가는 빠르게 하락하였고, 유가급등으로 인하여 신재생에너지주는 빠르게 상승하였다. 그리고 러-우 전쟁이 보여줬듯이 전쟁이 나면 올라가는 대한민국의 방산관련 종목은 치솟았다. 관련 기사들은 “고점을 뚫었다”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시장을 다시 달궜다. 국내 대표 방산기업으로 꼽히는 한화그룹의 시가총액 순위가 급등했다는 소식과 요즘 제일 잘나간다는 미사일 제조업체의 주가도 치솟았다(장문항, 2026). 누군가는 이 미사일을 포함한 아랍에미레이트 방공망 요격율이 90%로 검증이되었다 보도하며 우리나라의 방산기술을 자랑스럽게 보도하기도 했다(김태훈, 2026).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각국이 석유 확보에 각축을 벌이는 시기,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에 2,400만 배럴의 원유를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이 수출한 미사일 방어시스템 천궁-Ⅱ 공급이 결정적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기를 팔고 석유를 얻는 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서울경제, 2026). 이렇게 전쟁은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투자 기회로 빠르게 번역되었다. 이처럼 숫자는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멀어지는가

이라크 전쟁 이후, 우리는 전쟁을 거실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다. 24시간 뉴스 채널과 실시간 중계는 전쟁을 가까이 가져온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그것을 하나의 시각적 사건이자 서사적 콘텐츠로 재구성했다. Roger Stahl(2010)이 'militainment'라 부른 이 현상은, 전쟁이 정보 전달을 넘어 오락적 형식으로 소비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번 이란 사태도 예외가 아니다. 관련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소셜미디어 포스팅,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대응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화면에는 호르무즈 해협 지도가 등장하며 어디에 폭격이 이루어졌는지가 설명된다. 전쟁은 정치적 선택과 군사적 계산, 그리고 그 속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의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이 서사 구조에서 민간인의 고통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Susan Sontag(2003)이 지적하듯, 고통의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반드시 윤리적 응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Lilie Chouliaraki(2006)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디어가 '먼 고통'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시청자를 공감하는 주체가 아니라 관찰하는 위치에 머물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결국 우리는 고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계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매개된다. 이 공습 속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는 뉴스의 중심에 서지 못한다. 일부 보도는 수천 명의 사상자와 공장, 교량, 발전소, 병원과 같은 인프라 파괴를 전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사건을 이해하는 중심 서사가 되기보다 점차 주변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선택적 가시화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과 관계 맺는 방식을 조직한다. 전쟁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 결정이나 경제적 지표의 배경으로 밀려난다. 우리는 그것을 주가와 유가, 환율의 변화로 먼저 이해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전쟁에 감응하고 있지만, 그 감응을 관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국제 유가를 끌어올렸고,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었다. 산업의 핵심 설비 가동 중단, 원자재 가격 상승, 의료 및 산업 자원의 공급 불안 가능성은 이미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기름값 상승, 생활비 압박, 그리고 일상 속 불안은 모두 전쟁이 만들어낸 관계망을 따라 도달한 결과다. 


평화를 관계의 언어로 이해하기

우리는 보통 평화를 분쟁이 없는 상황으로 이해한다. 이 이해는 Johan Galtung이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라 부른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전쟁이 멈추면 평화가 온다는 것. Galtung은 일찍이 이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며 빈곤, 불평등, 억압과 같은 구조적 폭력의 부재까지 포함하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를 제안했다. 그러나 적극적 평화 역시 폭력의 ‘부재’를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점에서, 평화를 여전히 소극적으로 정의한다. 무언가가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 이 프레임 안에서 전쟁은 언제나 저기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평화다. 그래서 스스로를 노벨 평화상의 마땅한 수상자라고 주장하는 “전쟁을 끝내는 사람”이 다시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기를 반복하는 것일 터. 

그러나 최근의 평화연구에서는 이러한 목적지향적 평화 개념을 넘어, 평화를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 평화를 성취해야 할 상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평화학자 Morgan Brigg(2018, 2024)가 강조하듯, 우리는 처음부터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개인이 먼저 있고, 그 온전한 개인들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계가 행위자들 사이의 연결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돌봄윤리는 이 통찰에 윤리적 힘을 부여한다. Virginia Held(2006)가 강조하듯, 돌봄윤리는 자율적 개인들 사이의 계약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평화론과 달리, 관계를 존재론적 출발점으로 삼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취약하고 상호의존적인 존재로서, 타자의 돌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Joan Tronto(1993, 2013)가 말하듯, 돌봄은 특정 상황에서만 발동되는 선택적 덕목이 아니라, 삶 자체가 유지되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단지 인프라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관계의 조건 자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전쟁은 우리의 상호의존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면서도, 동시에 그 연결을 실천할 여력을 가장 철저하게 앗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폭격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취약함과 연결을 절실하게 마주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돌볼 자원과 시간을 잃고 자신의 생존으로 수축한다. 돌봄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 돌봄이 불가능해진다.

어쩌면 오늘날 전쟁의 가장 깊은 폭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세계에서, 타인의 붕괴는 함께 감당해야 할 취약함이 아니라 각자가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 치환된다. 오늘날 뉴스와 시장, 국가의 대응 방식은 전쟁을 끊임없이 국가와 개인의 생존, 그리고 이익의 문제로 번역한다. 이번 전쟁 속에서도 한국 사회가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결국 경제였다. 정부는 공급망과 에너지 수급, 시장 충격 관리에 집중했고, 언론은 유가와 환율, 수혜 산업과 방산주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대응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왜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에도 가장 빠르게 가시화되는 것은 주가와 공급망의 변화인가.

전쟁은 그렇게 우리가 서로의 삶을 공동의 것으로 감각하는 능력 자체를 침식하고, 우리를 점점 더 고립되고 취약한 개인들로 밀어 넣는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전쟁이 남기는 가장 깊은 상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화는 더 이상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일 수 없다. 그것은 서로의 취약함을 공동의 문제로 감각하고, 삶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관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실천이어야 한다. 관계로서의 평화를 주장하는 연구자인 나 역시 타인의 고통을 경제적 충격으로 먼저 감각하게 만드는 이 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쟁을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다시 이해하기 시작할 때, 평화 역시 다시 삶의 언어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만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참고문헌

Brigg, M. (2018). Relational and essential: Theorizing difference for peacebuilding. Journal of Intervention and Statebuilding, 12(3), 352–366. https://doi.org/10.1080/17502977.2018.1482078

Brigg, M. (2024). Furthering relational approaches to peace. Journal of Peace Research, 62(4), 1046–1060. https://doi.org/10.1177/00223433241267811

Chouliaraki, L. (2006). The spectatorship of suffering. SAGE.

Galtung, J. (1969).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 Journal of Peace Research, 6(3), 167–191.

Held, V. (2006). The ethics of care: Personal, political, and global. Oxford University Press.

Sontag, S. (2003).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Farrar, Straus and Giroux.

Stahl, R. (2010). Militainment, Inc.: War, media, and popular culture. Routledge.

Tronto, J. C. (1993). Moral boundaries: A political argument for an ethic of care. Routledge.

Tronto, J. C. (2013). Caring democracy: Markets, equality, and justice. New York University Press.

김태훈. (2026, 3월 3일). [단독] "요격률 90%"…한국 무기가 이란 미사일 막았다. SBS 뉴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8462630

머니투데이. (2026, 4월 13일). 美, 이란 해상 봉쇄에 국제유가 급등…항공·호텔·여행주 울상. 머니투데이. https://www.mt.co.kr/amp/stock/2026/04/13/2026041309415940179

시사저널. (2026, 3월 20일). 요미우리 "UAE 원유 공급 韓에 이례적 우대…'천궁'이 배경". 시사저널.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66554

장문항. (2026, 3월 3일). 지정학 리스크에 불붙은 방산주…한화그룹 시총 5위 올라. 서울경제. https://news.nate.com/view/20260303n3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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