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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갤러리
글번호
13236440
일 자
17.12.05
조회수
1631
글쓴이
박물관
청자상감 당초문 발

 명칭

(한글) 청자상감 당초문 발

(한자) 靑瓷象嵌唐草文鉢

 국적/시대

1918년~1922년

 크기

높이 7cm, 구경 18cm

 제작

이왕직 미술품제작소

 유물설명

굽 안 바닥에는 ‘秘苑製’ 인장이 찍혀있고 내면 가득 도안화된 모란당초문이외면에는 간략한 초화문이 선상감線象嵌되어 있는 청자 발이다올리브 그린 톤의 유약에 굵은 빙렬이 있으며굽 안쪽까지 시유되었고접지면 유약은 깨끗하게 닦아냈다. ‘李王家美術工場이 필사된 나무상자에 포장되어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상자에 적힌 ‘李王家美術工場의 정식명칭은 ‘이왕직 소관 미술품제작소이다. 1908년 창덕궁 자본을 기반으로 공예전통의 진작을 표방하며 설립된 ‘한성미술품제작소가 그 전신이다미술품제작소는 왕실 소용 미술품의 제작조선 미술공예의 진작일반 수요에 부응한 판매용 제품 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이왕직 직영으로 운영주체가 변화하며 ‘이왕직 소관 미술품제작소(1913~1922) 다시 민간인에게 운영권을 넘기며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1922~1936) 명칭을 변경하며 1936년까지 운영됐다.

이왕직 미술품제작소’, ‘이왕가 미술공장’, ‘미술품제작소’, ‘미술공장’ 등의 이름으로도 불려졌다금공金工염직染織제묵製墨나전칠기螺鈿漆器 등 일본인이 선호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부서가 운영됐고도자부가 신설된 것은 1918년경이다. 1910~1920년대는 골동 거래와 국토 토굴의 성행으로 청자에 탐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던 시기였다.

청자 수요에 따른 상품성에 대한 기대와 이왕직미술품 제작소의 설립취지인 전통공예의 복원이라는 명분을 결합하여 도자부를 설치했으나 고려청자 재현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왕직 미술품제작소 청자 구매를 독려하는 당시의 신문기사도 보이며전세되는 제작소의 도자기들은 당시 재현청자 가마 중 가장 유명했던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의 삼화고려소와 한양고려소 청자에 비하면 그 질이 다소 떨어진다결국 1922년 도미타 기사쿠의 인수를 기점으로 이왕직 미술품제작소의 청자 제작은 점차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한 도자기에는 秘苑製’ 혹은 秘苑燒라는 명문이 있는데창덕궁 후원인 비원에 가마가 있었던 증거는 아직 찾아볼 수 없어 확실한 의미를 알 수 없다비원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차용했거나 혹은 비원 주변에 작업장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매우 드물게 전해지는 이왕직 미술품제작소 제품인 이 청자 발은 유색의 깊이나 문양의 정교함에 있어 고려청자와는 차이가 있지만 1920년대를 전후한 시기 청자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공예 제작 구조와 제작기술 가늠하게 하는 귀한 유물이다.


학예연구원 황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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