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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822877
일 자
15.04.15
조회수
2221
글쓴이
개설관리자
기사계첩 耆社契帖

- 기사계첩

- 조선 1720년 견본담채(絹本淡彩)

- 보물 638호

이 계첩은 「계첩서(契帖序)」에 있는 바와 같이 숙종 45년(1719), 기해(己亥)(1719)년에 왕의 화갑(華甲)을 기념하여 70재(才)를 넘은 10명의 연로 대신과 함께 열렸던 계회(契會)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그 계회에 참석하였던 기신(耆臣)들의 발의로 1719년 4월 17일과 18일에 있었던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나 진경(眞景)의 제작이 오래 걸려 다음 해인 1720년에 완성되었으나 이때는 이미 숙종은 승하한 뒤였다. 모두 12부 제작되었는데, 한 권만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소유하였다.

이 계첩은 총 50면이며 그 내용은 계첩서(契帖序) 2면, 숙종의 어제(御製) 2면, 어첩발(御帖跋) 2면, 계회(契會)의 행사 때의 배진인명(陪進人名) 2면,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등의 그림이 각각 2면, 기신(耆臣)들의 명단 2면, 기신들의 진영(眞影) 10면, 기신들의 축시 19면, 이 계첩작성의 감조관(監造官), 서사관(書寫官), 화원의 명단 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사계첩의 다섯 개의 연회장면은 왕과 함께한 잔치와 은잔을 받는 장면, 기로소에 돌아와 다시벌인 잔치장면으로 크게 나뉜다.

- 어첩봉안도 御帖奉安圖

기로소에 보관하던 왕의 입사첩(入社帖)인 어첩(御帖)을 봉안하는 장면.

입사첩에는 왕의 생년월일, 입사 연월일, 어명(御名), 아호(雅號) 따위를 적었다.

- 숭정전진하전도 崇政殿進賀箋圖

경희궁의 정전(正殿)인 숭정전에서 축하하는 글을 올리는 장면.

- 경현당석연도 景賢堂錫宴圖

숙종이 경현당에서 베푼 잔치 장면.

차일이 쳐진 위쪽에 일월오봉병의 일부와 상차림이 보여 그 위쪽에 임금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화병이 좌우로 있는데 청화가 화려한 항아리로 주칠의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당하에는 여러 중신들이 늘어서고 기로당상들이 좌우로 벌려 앉아 임금이 하사한 술잔을 받고 있다. 이들 10인의 기로당상은 모두 은화를 꽂고 있는데 독상을 받은 채로 임금이 따른 술잔을 시자에게 전달을 받고 있다. 중앙에는 무용수 2인이 일무를 추고 하단에는 악대가 정연하게 늘어서 연주하고 있으며 좌우에 시립한 여러 기수의 모습 등 당시 간소하지만 장엄했던 궁중의 행사를 엿볼 수 있다.

- 봉배귀사도 奉盃歸社圖

임금이 내린 은잔을 받들고 기로당상들이 기로소로 가는 장면.

잔치에 소용되는 모든 물품과 인물들이 함께 자리를 옮기고 있다. 무동과 처용무의 무용수, 악사들이 앞서고 사모에 은화를 꽂은 기로당상들이 자리에 호피를 깐 연에 올라 파초선을 드리운 채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행사를 구경 나온 인물들을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고 소를 끌어 가다 멈추어 서기도 하여 대단히 긴 행렬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기사사연도 耆社私宴圖

기로소에 돌아온 기로당상들의 가진 연회의 장면.

차일을 친 전각 내부의 붉은 탁자 위에 붉은 보자기가 풀려 있어 임금이 하사한 은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죽 늘어 앉은 기로당상들은 술에 취한 듯 부축을 받기도 하는데 모두 임금 앞에 나갔다 온지라 쌍학흉배를 댄 관복을 입고 있다. 이들 당 아래 섬돌에는 청화로 용이 그려진 술독과 흰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고 마당 중앙에는 오방처용무가 한창이다. 담벼락 안에는 구경나온 사람들이 죽 둘러 서있는데 무명 바지저고리 차림에 맨발인 두 노인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연회 중에 두 걸인 노인이 나와 춤을 추므로 나이를 물으니 팔십이라 하여 남은 음식과 술을 주었다는 기록과 동일한 장면이다.

- 좌목 座目

기로회(耆老會)에 참석하였던 기신(耆臣)들의 자리배치로, 11명의 이름과 관직명(官職名)이 기록되어 있다.

- 초상

기로회(耆老會)에 참석하였던 기신(耆臣)들의 진영을 그린 것으로, 녹포단령(綠袍團領)의 관복차림에 두 손을 맞잡은 공수(拱手)자세를 취한 반신상의 모습이다. 본래 좌목에 기록된 기신은 11명이나 행판돈녕부사(行判敦寧府事) 최규서(崔奎瑞)는 당시 은퇴하여 시골에 머물렀기 때문에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10명의 초상만이 전하고 있다. 이들의 초상은 18세기 초의 전형적인 초상화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어 미술사적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높다.

(우) 75세 영부사 이유 초상

領府事鹿川李公七十五歲眞

(좌) 72세 영의정 김창집 초상

領議政夢窩金公七十二歲眞

(우) 71세 행판부사 김우항 초상

行判府事甲峯金公七十一歲眞

(좌) 81세 지사 황흠 초상

知事黃公八十一歲眞

(우) 70세 지사 강현 초상

知事白閣姜公七十歲眞

(좌) 75세 행사직 홍만조 초상

行司直晩退洪公七十五歲眞

(우) 74세 행부사직 이선부 초상

行副司直六松李公七十四歲眞

(좌) 72세 판윤 정호 초상

判尹丈巖鄭公七十二歲眞

(우) 81세 우참찬 신임 초상

右參贊竹里申公八十一歲眞

(좌) 80세 지사 임방 초상

知事水村任公八十歲眞

- 축시 祝詩

기로회(耆老會)에 참석하였던 기신(耆臣)들이 연회를 축하하며 자필로 적은 축시(祝詩)이다.

축시의 내용을 통해 현장의 영광된 감격을 느낄 수 있으며, 당시의 서체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의정 김창집의 축시를 비롯한 19개의 축시가 수록되어 있다.

(우)김창집 축시 金昌集祝詩

(좌)이유 축시 李濡祝詩

[해석]

기로사 기쁨을 축하한 시를 삼가 차운함.

요임금 연령을 언제고 팔천년을 빌었더니

기로사에서 지금 억만가지 좋은 일 만났네.

동궁에서 글제를 내어 옛일을 모방했고

보첩(?帖)을 봉안하매 누각을 새로 지었구나.

궐내에서 벌써 만세의 하례를 드렸고

옥체는 약 안 쓰고도 나으신 줄 내 들었네.

다행히 이 몸이 태평성대 만났으니

성대한 연회와 큰 은택이 함께 흐르네.

영중추부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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