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관람 현재교육안내 아트샵서점

소장품갤러리
글번호
1822864
일 자
15.04.15
조회수
1607
글쓴이
개설관리자
백자철화 포도무늬 항아리 白磁鐵畵葡萄文壺

 

 

국보 제107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조선 18세기

높이 53.5cm, 구경(口徑) 19.4cm, 저경(底徑) 18.6cm, 동경(胴徑) 43.4cm

 

민족의 아픔과 이념의 전란을 온 몸으로 겪은 이 항아리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골동상에서 개인 수장가에게로 그 거처를 옮기는 우여곡절 끝에 1965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소장되었으며, 그 후로 지그까지 우리나라의 조형미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사람들의 눈과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일체의 장식문양을 자제한 채 기면 전체를 화폭 삼아 그린 넓은 이파리들과 그 사이로 뻗어나간 포도넝쿨은 붓놀림이 자유자재하고 주렁 낭창하게 매달린 포도송이에 철사(鐵砂) 안료로 농담(濃淡)을 부려가며 그린 품이 한 폭의 빼어난 묵포도도(墨葡萄圖)이다. 곧게 솟은 입으로부터 곡선을 그리며 팽창하듯 내려간 어깨, 대담하게 좁아든 저부에서 당당함과 함께 숨을 멎게 하는 형태는 긴장감을 주지만 어깨에서 몸체 중간까지 자연스럽게 드리운 가지의 힘찬 선과 적절한 여백처리로 이내 편안해지고 만다. 그 빈 공간 속으로 바람이 불면 흔들림이 그대로 전해져 올 듯 사실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항아리를 진정한 ‘백자(白磁)’이게 하는 것은 ‘공예’로서 도자기 본연을 충실히 구연했다는 점이다. 동체 중간부 아래 위를 따로 만들어 접합한 흔적과 일부 유악이 벗겨져 태토가 드러난 것을 제외하면 식은 테〔氷裂〕가 거의 없이 유약이 고르게 입혀졌고 몸체도 정제가 잘 된 고운 백토로 만들어져 매끄럽다. 거기에 발색(發色)이 까다로운 철사안료를 종이나 비단보다 어려운 도자기 표면 위에 능숙하게 구사해내었다.

즉, 사회ㆍ문화가 안정되고 가장 조선적 문화의 성숙함이 무르익던 조선후기 왕실 관요(官窯)의 질 좋은 원료와 성공적인 시유(施釉), 최적의 번조(燔造)로 이루어낸 기술의 결정체인 것이다. 예로부터 포도는 수태와 건강ㆍ장수ㆍ풍요ㆍ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책의 ‘page’, 그 어원이 늘어선 포도넝쿨을 의미하는 ‘pagina’에서 왔음을 상기하며 한유(閒遊)의 시간 조용히 이 항아리를 대하자면 다산(多産)이나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이 희구(希求)는 아니었으리라, 오히려 한 낱 한 낱 책장을 넘기 듯 줄기를 따라 걷어 올려지는 만만치 않았을 삶의 이야기와 문기 어린 고백을 들을 수 있으니….

장남원(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박물관문화 2002 봄ㆍ여름 호>에서 발췌



백자철화포도문(白磁鐵畵葡萄文)항아리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곧게 솟은 넓은 입과 곡선을 이루며 풍만하게 벌어져 내려갔다 좁아지는 몸체는 당당하면서도 긴장감이 있다. 53.8㎝나 되는 장신의 항아리가 보여주는 풍만함과 의젓함에 놀라움을 느낀다.

영조는 1750년 《조선왕조실록》에서 "옛날에는 도자기의 그림을 석간주(철사)로 그렸다 하는데, 요즈음 들으니 청료(靑料)로 그린다고 하니 매우 사치스러운 풍조이다. 그런즉 이후에는 용항아리 외에는 일체 엄금한다"고 썼다. 값비싼 청화(靑畵) 안료로 그림을 그리기보다 철화(鐵畵)로 그릴 것을 명했는데, 백자철화포도문호(壺)도 이 시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포도그림은 예로부터 장수와 풍요·생명력의 상징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이 항아리는 장수를 상징하는 연회에 쓰이는 술 등을 담아 왕실 잔치에 사용됐다가 요행 잘 남은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해마다 사옹원(司饔院·왕실의 음식 및 그릇을 담당한 관청) 관리가 화원(畵員·도화서의 직업화가)을 이끌고 왕실에서 쓸 그릇을 감독하여 만든다"고 기록했다. 왕실 연회 등 잔치에 쓸 항아리 제작을 위해 전문직 화원이 참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윤용이(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조선일보 2009. 8. 10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박물관 100년 특별전 대표유물]에서 발췌



짧고 곧은 입구 아래 넓게 벌어진 어깨가 당당하고,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며 드러나는 풍만한 굴곡이 유려하다. 하얀 바탕 위에는 구불구불한 넝쿨이 뻗어 나가고, 검푸른 잎사귀 사이로 탐스러운 포도알이 빛난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의 국보 107백자 철화 포도문 호(白瓷鐵畵葡萄文壺)’18세기 조선 백자 항아리 중에서도 뛰어난 제작 솜씨를 공인 받아온 수작(秀作)이다. 대형 백자는 대개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이므로 접합 부분이 터지거나 주저앉는 등, 제작이 쉽지 않으며 포도문 호역시 접합의 흔적으로 몸체 가운데 희미한 가로줄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지러짐 없이 균형 잡힌 형태로 고르게 잘 구워진 모습에서 포도문 호는 대형 항아리의 당당함을 드러내는 예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 빛깔의 철사(鐵砂) 안료로 그려져 항아리의 너른 어깨를 감싸는 포도 무늬다. 본래 철사 안료는 간혹 지나치게 검거나 누렇게 되는 등 안정된 색을 얻기 어려운데 그러한 특성을 오히려 농담의 표현으로 활용하며 자연스러운 효과를 얻어 낸 것이 더없이 절묘하다. 평면이 아닌 곡면 위에서 포도의 특징을 세밀하면서도 능숙하게 표현해 낸 솜씨 역시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뛰어나다.

포도는 본래 중동과 흑해, 카스피 해 연안이 원산지로, 우리에게는 삼국시대에 유입되었다고 추정되지만 본격적으로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고려 말부터다. 조선 전기에 걸쳐 탐스러운 포도를 감상하며 포도주의 달콤함을 상찬하는 기록이 자주 보이므로, 포도를 심고 가꾸며 술로 즐기는 문화가 이 무렵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두어 송이 주렁주렁 수정이 매달려, 살갗은 투명하고 씨 또한 분명하니,

누가 만곡(萬斛)의 시고 단 맛을 저장했나, 입 속 옥구슬 진액이 맑구나(하략)

數朶離離綴水精, 肌膚瑩徹子分明,

誰藏萬斛酸甛味, 齒舌中間瓊液淸

 

<수정 포도 水精葡萄>, 이색(李穡, 1328~1396)

 

나에게 포도나무 두서너 그루가 있어, 높은 시렁에 넝쿨 끌어서 주룡(走龍)이 드리우며,

짙은 그늘 땅에 가득하고 푸른 구름 널리 퍼져, 주렁주렁 열매 맺어 여주(驪珠)를 드리우니,

수박보다 달고 우유보다 부드러워, 한 알을 입에 넣으니 오랜 병도 가시네(하략)

我有葡萄三兩株, 高架引蔓走龍胡,

濃陰滿地翠雲敷, 纍纍結子垂驪珠,

甛於西瓜潤於, 一顆入口沈

 

<포도가 葡萄歌>, 서거정(徐居正, 1420~1488)

 

포도 넝쿨을 용에 비유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때 유명 시인인 한유(韓愈)가 당시 서역에서 들어왔다는 마유(馬乳) 포도의 넝쿨을 용의 수염(龍鬚)에 빗댄 것과 연관되며, 이후로도 포도에 대한 고전적인 표현으로 애용되었다. 용이 나는 듯 거침없이 뻗은 넝쿨에 수정이나 옥 보주와도 같은 탐스러운 열매가 열려 그 달콤한 맛 또한 일품이라며 문인들이 앞다투어 칭송했던 포도는 조선시대 내내 귀한 과일로 사랑 받았다. 태조 때 포도를 먹고 왕의 병이 회복되었다거나 태종 때 포도를 바친 이에게 상을 내리기도 하고, 성종 때 승정원, 홍문관 등에 술과 포도를 내려 시를 지어 올리게 했다는 등의 기록은 일찍부터 왕실에서도 포도 사랑이 지극했음을 보여 준다. 국가 제사를 지내던 종묘에 계절별로 올리던 물품 중에도 7월에 청포도, 9월에 산포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몸과 마음의 갈증을 풀어 주는 청신함으로 왕실과 문인의 사랑을 받은 포도는 황집중(黃執中, 1533~?)이나 심정주(沈廷胄, 1678~1750), 이인문(李寅文, 1745~1821) 등 여러 화가들에게도 좋은 그림 소재였다. 포도 외에 다른 무엇을 더하지 않고 여백을 강조한 화면 구성이나 농담을 살려 세밀하면서도 힘 있게 묘사해 낸 그림 속 포도 모습은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포도문 호에 그려진 것과 닮아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포도는 수많은 열매와 한없이 뻗어 나간 줄기에 풍요와 다산, 자손 번창의 상징이 더해지면서 도자기를 비롯한 각종 공예품의 문양으로 한층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포도를 통해 옛 사람과 교감하고 잘 익은 포도주로 회포를 풀던 문인들의 정취에 현실적인 바람과 소망이 더해진 데에는 열매로, 넝쿨로, 때로는 술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한 포도의 미덕이 그 자체로 뿌리 깊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 덕분이리라.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포도문 호의 비어 있는 듯 가득 찬 하얀 바탕 위에 길게 드리워진 넝쿨과 단단히 여문 열매가 더욱 빛나게 느껴지는 것도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이 항아리의 우직함이 우리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감동을 전하기 때문은 아닐까.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포도문 호의 진면목은 박물관 개관 80주년 기념 특별전 <조선백자> 전시를 통해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91일부터 내년 130일까지 계속된다.


송인희(박물관 학예연구원)

월간 <우표>, 2015.9월호(통권 596), 한국우취연합, pp.56-57

게시판검색
처음 이전 다음 마지막

소장품갤러리

  • >
  • 소장품 >
  • 소장품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