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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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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수정
문명 속 야만, 그 무서운 전파력 (한겨례 2009. 9.5)

문명 속 야만, 그 무서운 전파력

 

‘탈식민주의’ 석학 호미 바바, 첫 내한 강연



          호미 바바(60) 미국 하버드대 교수

 

 

 

“곳곳에서 표출되는 극단적 잔인성이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와 함께 탈식민주의 이론의 양대 흐름을 대변하는 호미 바바(60·사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바바 교수는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과 프란츠 파농의 반제국주의, 미셸 푸코의 지식-권력론 등을 종합해 식민주의 담론의 해체를 시도하는, 이론적으로 가장 정교하다고 평가받는 탈식민주의 이론가다.

 

 

내전·테러·대량학살 등  ‘극단적 잔인성’ 나타나  패러다임 전환 지경까지

 

아·태국제교육원의 초청으로 방한한 바바 교수는 4일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 연구단이 마련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전지구적 기억에 관하여-야만적 전파에 대한 성찰’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바바 교수는 강연에서 “현대 문명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만한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며 “이런 변화의 배후에 놓인 것은 인류가 전 지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극단적인 잔인성”이라고 말했다. 바바 교수가 잔인성의 사례로 든 것은 매일 국제뉴스의 머리를 장식하는 내전과 테러, 대량학살이다. 그는 “폭력과 테러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감시와 통치의 핵심 목표가 되면서 정치는 사라지고, ‘안보’는 다른 나라와 문화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프레임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이지 않고 인지되기 힘든 야만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강하게 경고했다. 아도르노가 이야기하듯 민주주의 안의 야만, 문명 안의 야만이 가시적인 야만보다 훨씬 위협적이란 얘기다. 그는 “문제는 문명이 전승되고 이식되듯 야만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단히 전파된다는 점”이라며 “문명에 내재하는 야만의 전파야말로 야만이 지닌 역동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제국주의 운동가인 프란츠 파농의 폭력저항 노선에 반대해온 이유도 명확히 밝혔다. 그는 “만델라처럼 자유를 위해 투쟁한 많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로 불렸고, 그들의 테러는 절망적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고,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테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강연이 열린 이화여대 엘지 컨퍼런스룸은 세계적 석학의 첫번째 방한강연을 들으려는 청중들로 300여 좌석이 가득 찼다. 바바 교수의 저서로는 대표작 <문화의 위치>가 번역돼 있다. 파농이나 사이드에 견줘 정교한 개념과 치밀한 논리구조를 자랑하지만, 탈식민의 문제를 지나치게 문화의 차원에서만 사고한다는 비판도 있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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