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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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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수정
영화를 봤다... 인문학을 만났다. (2011.9.26 이대학보)

영화를 봤다... 인문학을 만났다.

 

 

‘열림과 소통’이라는 취지로 진행되는 인문주간이 19일(월)~25일(일) 여섯 번째를 맞았다. 이번 인문주간의 주제는 ‘삶의 지혜와
행복 찾기’로,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성, 삶과 죽음, 행복과 사랑에 관한 것을다뤘다. 인문주간에는 대중의 소통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 많이 마련됐다. 본교에서는 인문과학원이 주최한 ‘영상의 인문학-행복한 영화보기’가 20일(화)~24일(토) 오후7시~10시 진관 앞뜰에서 진행됐다. 진관 앞뜰에는 영화 상영을 위한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됐고 100여석의 좌석이 거의차 빈자리를 찾는 관객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인문주간 동안 상영된 영화는 ▲아멜리에 ▲가타카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파란만장 5 편이다. 인문과학원은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우수한 영화 중 인간의 행복과 조건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영화를 선택했다. 20일 (화)~23일(금) 영화를 상영한 후에는 인문과학원 교수들이 영화를 분석하고 의미를 찾는 강연이 진행됐다. 24일(토)에는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이 마련됐다.




22일(목) 오후9시 진관 앞뜰에서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상영 후 인문과학원 이찬웅 교수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 따뜻한 색감이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 아멜리에

“삶의 쾌락은 작고 무해한 감각적 즐거움으로 채워진 상자 같은 것입니다. 파이껍질을 숟가락으로 깨뜨리는 순간의 쾌감, 강물에 물수제비 뜨는 재미, 곡식 자루에 손을 넣어 알갱이가 손가락 틈새를 빠져나가는 촉감이 그 예지요.” ‘영상의 인문학-행복한 영화보기’의 시작을 알린 영화는 20일(화) 상영된 장-피에르 주네 감독의 ‘아멜리에’였다. 아멜리에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과 남성의 부드러운 해설로 영화를 시작했다. 아멜리에는 주네 감독의 특징인 오렌지 필터의 사용으로 특유의 따뜻함과 선명한 빨강색이 영상미를 이룬다. 주인공 아멜리에 (오드리 토투)는 우연한 기회로 40년이 넘은 추억 상자를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타인에게 작은 행복을 찾아주는 기쁨을 알게 된다.
소소한 행복을 주변에 선물하던 아멜리에는 우연히 기차역에서 버려진 사진을 수집하는 니노(마티유 카소비츠)를 만난다. 아멜리에가 등장할 때는 우울하면서도 고운 피아노 곡조가, 니노가 등장할 때는 유쾌한 아코디언 음악이 흐른다. “니노가 미처 아멜리에의 쪽지를 읽지 못하자 아멜리에는 그 자리에서 물이 돼 흘러버립니다. 사실주의를 중요시 하는 프랑스 영화에서는 나타나기 힘든 장면으로 주네 감독이 연애 초기의 감성을 제대로 표현한 부분이죠.” 아멜리에는 영화 내내 파리를 휘저으며 니노의 마음을 애태우고, 결국 그의 마음을 쟁취하는데 성공한다. 아멜리에 상영 후 인문과학원 이수진 교수는 ‘행복의 발걸음’을 키워드로 꼽으며, 인문주간을 대표하는 사
람이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줬다. 그는 인문주간의 대표 이미지를 제작하는데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행복은 목표하는 지점에 있는것이 아니라 인문주간 대표 이미지처럼 그대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며 “아멜리에 역시 혼자 살던 삶에서 벗어나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가치 지점에 선 영화,  가타카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훌륭한 우성인자 제롬 머로우(주드 로)의 집 계단은 유전자 지도처럼 꽈배기 모양으로 올라간다. 미래 세계 가타카는 유전자 조작으로 계급을 나누는 시대다. 유전학적으로 하등한 부적격자 빈센트 프리만(에단 호크)은 우주 비행사를 꿈꾼다. 21일(수)에는 전날보다 많은 관객이 앤드류 니콜 감독의 ‘가타카’를 관람하기 위해모였다. “내가 너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돌아가는 힘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야.” 빈센트는 오래 전부터 우성인자 동생과 수영 시합을 한다. 처음에는 부적격자이기 때문에 이길 수 없던 동생을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제치게 된다. 그는 다리 부상을 당해 우성인자 제롬의 신분을 사 가타카에 입사한다. 신상규 인문과학원 교수는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신 교수는 “인간의 능력을 향상 시키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 계속 될 경우, ‘우리는 멋진 신세계인 가타카 를 과연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주의적 우생학은 인간의 변형에 대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지지하면서, 가타카의 디스토피아와는 달리 낙관적인 전
망을 펼친다. 이와는 다른 입장으로 위르겐하버마스, 마이클 센델 같은 학자들은 아이를 선별해서 자질을 개선하는 유전학적 개입은 ‘자유롭고 평등한 본연의 대칭적 관계’ 를 파괴한다고 본다. 영화 후반부에서 제롬은 우주로 떠날 준비를 하는 빈센트에게 “나는 네게 몸을 빌려줬지만, 너는 내게 꿈을 줬잖아”라고 말한다. 영화는 반대의 신분에 놓였던 두 인물이 서로의 가치와 열망을 이해하는데 이른다. 신 교수는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열망과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초월적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 사라짐으로 존재를 기억하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내가 죽으면 내게 남아있는 그녀의 기억은 어디로 가는 거지?”독일 노신사 루디(엘마 웨퍼)는

 아내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가 사랑한 나라 일본에서 아내의 흔적을 찾는다. 루디는 트루디의 바다색 스웨터를 입고 트루디에게 일본 구경을 시켜준다. 23일(목) 상영된 영화는 도리스 되리 감독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원제 ‘벚꽃’) 이었다. 고요한 후지산의 풍경을 도입부로 시작한 영화는 독일과 일본을 배경으로 노부부인 트루디와 루디의 사랑을 녹여내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는 1953년에 개봉한 영화 ‘동경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익숙한 사랑, 낯선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문과학원 이찬웅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관객을 위해 영화의 첫 장면을 보여줬다. 그는 “독일에서 후지산까지의 여정, 죽음의 순간까지 예고가 영화 전체를 효과적으로 요약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하루살이, 사과, 손수건등 영화에서 등장하는 핵심적인 소재를 시간 순서로 분석했다. “영화 속에는 부토 댄서가 되고 싶었던 아내가 남긴 독특한 부토 사진첩이 등장합니다. 이 사진첩은 페이지를 넘기면 동적인 모습을, 사진 한 장씩 보면 정적인 모습을 남깁니다. 현실화되지 못한 보류된 꿈을 기록한 것이죠.” 영화에서 루디는 아내 트루디를 잃은 뒤 아내가 추고 싶어 했던 일본의 부토 춤을 찾
아 일본으로 향한다. 루디는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에서 부토 춤을 추는 소녀인 유를 만나게 되고 유를 통해 그림자로 춤을 추는 부토 춤과 아내 트루디를 이해하면서 안식을 얻는다. 이 교수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를 통해 부토 춤을 추며 루디는 죽음과 삶을 이해한다”며 “아내의 흔적을 찾기 위해 헤매던 루디가 결국 춤을 통해 아내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 인간은 선택할 권리가 있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2 3일(금)에는 스벤타딕켄 감독의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가 상영됐다.
영화는 한적한 농장에서 돼지를 키우며 살고 있던 억척스러운 시골 처녀 ‘엠마(조디스트라이벨)’가 등장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 ‘막스(위르겐 포겔)’가 빗길에 교통사고로 엠마의 집에 불시착한다. 인문과학원 천현순 교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주제로 안락사 문제를 언급했다. 영화는 안락사를 시골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의 행복한 죽음을 통해 상기시킨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독일은 기독교적 전통이 강해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당신만 느껴질뿐이야.” 막스는 엠마의 손에 의해 죽는 돼지를 행복하다고 인식한다. 그는 엠마의 손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죽어가는 것’을 엠마에게 부탁한다. “엠마가 막스에게 선사한 행복한 죽음이란 일종의 ‘적극적 안락사’입니다. 적극적인 안락사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죽음을 행하는 행위죠.”
그는 “막스와 무사히 작별을 고한 후 홀로 남겨진 엠마는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며 “타딕켄 감독은 시골 여자 엠마와 도시 남
자 막스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행복,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전달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행사의 마지막 날인 24일(토)에는 박찬욱, 박찬경 형제 감독의 ‘파란만장’이 인문주간 영화제를 마무리지었다. ‘파란만장’은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필름 단편 영화다. 이 날은 강연이 아닌 박찬경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GV)가 진행됐다. 영화 관람과 강연이 끝난 후에는 매일 관객 10명 내외를 대상으로 기념품을 추첨했다. 당첨된 관객에게는 인문과학원에서 발간한 서적이나 기념품 등이 제공됐다. ‘아멜리에’를 관람한 김민지(교육공학과 석사과정·11)씨는 “요새 프랑스 영화에 관심이 생겨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있다”며 “강연을 통해 영화에서 본 것 이상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현정(영문·08)씨는 “‘영미문화의 이해’ 수업을 통해 인문주간 행사를 참여하게 됐다”며 “생각해볼만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됐고, 평소 관심 갖기어려운 분야를 강의로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인문과학원 전혜숙 교수는 “‘행복한 영화보기’ 행사는 이화인과 시민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더하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진행됐다”며 “인문학은 우리 삶을 깊이 있고 풍요롭게 하는 학문이자 동시에 살아가는 힘을 스스로 찾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박준하 기자 parkjunha@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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