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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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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수정
한국, 근대지식 유통 노려 (2013.4.9 교수신문)

한국, 근대지식 유통 노려 … 中은 우아한 문체 강조하고 日은 자국어의 우수성 주장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연구단_20세기 초 한·중·일 번역 지형도 점검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7013


20세기 초 한·중·일 삼국의 근대지식 수용과 번역의 관계를 다룬 흥미로운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5~6일 이화여대에서 개최됐다.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연구단(단장 장미영 독어독문학과 이하 탈경계연구단)은‘지식을 (재)번역하라’를 주제로 삼고, 키워드를 ‘번역’으로 선정해, 삼국의 역학 관계속에서 근대지식이 어떻게 번역, 재번역됐는가를 살피는 동시에 번역 주체로서 역관, 여성지식인 등에 주목했다.


 

 

 

왜 번역인가. 탈경계연구단은 번역을 단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라는 협의의 개념을 넘어, 그 자체 외래문화와 사상들이 유입·매개되는 場이며, 문화 주체 간의 상호관련성이 실현되는 과정이고, 나아가 다양한 권력 관계의 역학구조가 반영되는 지점으로 규정했다. 번역이 갖는 문화적, 정치적 함의와 역학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다양한 권력 역학관계 반영되는 ‘번역’

 

일본 메이지 시대의 번역에 대해서는 고모리 요이치 일본 도쿄대 교수가 살펴봤다. 동아시아 삼국 지식 수용의 역학관계와 근대 번역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자인 고모리 요이치 교수는「일본 근대 소설 문체의 성립과 번역문체」기조강연에서, 메이지 시대 쓰보유치 쇼요의『소설신수』를 통해 서구적 소설에서 전지적 시점의 서술문 문체를 성립시킬 수 없었던 일본 근대소설의 숙명을 살피고, 이후 쇼요가 이야기 세계 내부에 한정된 시야를 가진 화자에 의한 서술문의 통일과 회화 장면의 ‘엿듣기’ 형태를 방법론으로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칭’에 대한 강조가, 메이지 시대 지식인 사이에 급속히 퍼진 영문번역문화와 영문번역문체의 영향이라고 말하며, 쇼요는 주인공의 의식 내부를 따라오는 화자가, 동시에 그 의식 외부에서 전개되는 다른 작중인물들의 회화장면을 ‘엿듣고’ 주인공의 의식상태의 망상성을 폭로함으로써 그에 휘둘리는 주인공을 상대화하는 소설문체를 성공시켰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청나라에서 기자로 활약했던 모리타 시켄의 일련의 번역 작품들을 거론한다. 그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배양된 정통적·공적인 표현으로서의 한 문체가 현실적인 청의 室境을 그릴 수 없음을 자각한 시켄의 문체가 모험·추리 번역 소설에서 더욱 구체화 됐음을 밝힌다. 시켄은 ‘신문체’를 창출하기 위해 일본어의 미사여구·상투적 표현을 제거하고, 순수한 중국문장의 문법법칙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진부한 말을 역으로 회전시킨 자유로운 문체에 관해서는 오히려 일본의 문장이 우수하다고 시켄은 주장했던 것이다. 요이치 교수는 시켄이 말과 말의 통합 부분, 그 양태에 의미생성 기능이 있음을 자각했다고 주장하며 그의 번역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서스펜스 수법’이 전통적·문화적 함의에 기댄 표현방법에서 벗어나있음을 근거로 제시했다.

 

‘번역’을 통해‘근대지식유통자’가 된 조선 말기 역관에 주목한 발표도 이어졌다. 박경 이화여대 HK연구교수(조선전기사)는「역관 玄采의 근대 번역 주체로의 성장 과정」발표에서 역관 출신으로 교과서 편찬자, 역사가, 계몽운동가로 활동하던 현채가 대한제국의 근대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번역’에 주목했다. 조선 말기 통역과 번역을 담당하던 현채는 갑오개혁 이후 교과서를 편찬하고 본격적으로 외국 서적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역관에서 근대지식유통자로

 

현채는 번역의 이유를 외국의 사례를 거울삼아 자강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밝히며『중동전기』,『 만국사기』,『 동국사략』등을 번역했다. 박 연구교수는 현채가 번역작업을 통해 발전시켜 온 인식들이 아동과 대중을 위한 교과서인『유년필독』에서 더욱 구체화됐고, 그 속에서 ‘번역가’를 넘어선 ‘근대지식유통자’로 성장한 현채의 모습까지 추적해냈다. 고대로부터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흐름을 4권 132과로 편제한 현채의『유년필독』은 한국의 지리와 역사를 쉬운 문체로 번역했다는 평을 받는다. 단지 쉬운 번역을 넘어서 1권 1~2과의 주제를 ‘나라’, 4권 33과의 주제를 ‘와신상담’으로 설정함으로써 현채는, 개인이 중요한 이유를 국가의 구성원에서 찾고, 부강한 나라(독립)를 이루기 위해 실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점까지 주문했다.

 

중국의 번역은 어떤 양상이었을까. 장민 중국 베이징대 교수「옌푸(嚴겖)의 번역론 ‘信·達·雅탐구: 중국 근대 번역이론의 출발」에서 중국 번역사에 세 차례의 번역 전성기가 있다고 밝혔다. 첫 번째는 대규모 불경번역이 이뤄졌단 1세기 초, 두 번째는 19세기 5·4운동 전후의 西學번역, 그리고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터넷시대의 번역학 열풍이다. 장민 교수는 170만 자가 넘는 서학 번역서를 집필한 번역의 대가 옌푸가 번역기준으로 제시한 ‘신·달·아’의 의미와 번역사적 가치, 계승적 특징에 주목했다.

 

옌푸는 영국 생물학자 헉슬리의『진화와 윤리』를 번역한『天演論』의 서문에서 “번역에는 세 가지 어려움이 있다. 원문에 충실해야 하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문장이 규범에 맞고 우아해야 한다”라는 ‘신·달·아’개념을 제시했고, 이 명제는 즉시 중국 번역계의 金科玉條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장민 교수는 100년이 넘도록 중국 근대 번역이론의 발전을 좌우했던 옌푸의 ‘신·달·아’ 三字經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반응은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중국 번역이론의 발전 특징을‘案本-求信-求雅-神似-化境’의 개념으로 개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장민 교수는 도안의 案本과 求信, 푸레이의 神似, 쳰중수의 化境등이 옌푸의 개념과 맞물려 중국 번역이론 전승의 연결고리가 됐고, 三似論이나 三美論과 같은 중국 현대 번역이론 역시 옌푸의 三字經번역이론이 조금씩 발전해 온 결과물이라고 봤다.

장민 교수는 전통과 현대의 줄다리기 속에서 우회적으로 발전한 중국 번역이론에에서 옌푸의 지극히 우아한 번역이 번역문을 아주 높은 수준의 雅까지 올려놓게 됐고, 이는 번역기준이 ‘文以載道(글로써 사상을 표현한다)’라는 이념에 바탕을 뒀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살펴본 서구지식을 받아들이던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번역에 대한 서로 다른 양상은, 당시 삼국이 처했던 정치적,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서구와의 권력 역학관계 속에서 지식인의 대처 방법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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