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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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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수정
격정적인 춘향, 능글맞은 방자 (2013.4.7 경향신문)

격정적인 춘향, 능글맞은 방자… 첫 일본어 번역본엔 없는 이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072124005&code=960201

ㆍ‘보수적 신분제’ 맞춰 소개한 탓

<춘향전>은 일본에서 발표된 한글 고전문학 번역본의 효시로 꼽힌다. <계림정화 춘향전(鷄林情話 春香傳)>(사진)이라는 이름으로 1882년 6월25일부터 7월23일까지 아사히신문에 20회 연재됐다. <춘향전> 최초의 외국어 번역본인 <계림정화 춘향전>의 번역자는 부산 왜관에서 소년기를 보낸 아사히신문 특파원 출신의 나카라이 도스이다.

이선윤 이화여대 HK 연구교수가 <계림정화 춘향전>을 중심으로 고전의 번역과 그 소비 양상을 분석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이 교수는 지난 5일 열린 이화여대 인문과학원의 ‘지식을 (재)번역하라: 20세기 초 한·중·일 번역의 지형’이란 국제학술대회에서 “고전문학은 번역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타자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거친다”고 밝혔다. 또 “번역된 고전 텍스트는 이방의 ‘전통’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소개되면서 ‘전통’과 대비되는 이질적 ‘전통’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타자의 시선’이란 필터는 (원문의) 삭제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계림정화 춘향전>에서는 방자가 이도령이나 춘향에게 농담을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언행을 보이는 장면이 삭제됐다. “신분질서에 관련된 부분이 극히 보수적 신분제의 필터를 통해 번역, 소개된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특히 이도령은 당당하고 진취적인 자세의 남성상, 춘향은 조용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여성상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번역에 반영됐다. 춘향이 방자에게 화를 내는 장면같이 춘향의 격정적인 모습은 번역본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교수는 “메이지기는 표면적으로 일본 여성들의 기회와 자유가 증대된 것으로 보였으나, 여러 법제의 보완을 통해 결국 가부장권이 강화된 측면도 있었다”며 “(강하고 생기 넘치는 춘향의 모습은) 번역 과정을 통해 정제돼 고전적 조선 여성으로 변모됐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춘향전>은 꾸준히 유통되는 한국 콘텐츠다. 일본이 패전한 1945년 이후 나온 <신편 춘향전>(이인직 번역), <춘향전>(허남기 번역)은 지금도 재판을 거듭하며 발행되고 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1996년에는 시대 배경을 조선에서 고려로 옮기고 판타지를 강화한 만화 <신춘향전>이 나오기도 했다. 한류 붐 이후에는 한국 드라마 <쾌걸춘향>이 일본어로 번역, 방영됐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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