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마크 롤랜즈 지음 | 책세상 펴냄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는 철학자의 시선에서 '공상과학(SF)영화 재관람'을 돕는 책이다. <프랑켄슈타인>,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반지의 제왕> 등 할리우드 영화 속 철학적 주제를 사유한다. 저자가 SF영화에서 철학적 사유를 시도한 이유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 로봇, 외계인 등 타자와 그것을 보는 시선을 통해 자신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선 <철학자와 늑대>로 유명한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과 교수 마크 롤랜즈가 썼다. 책은 영화 <프랑켄슈타인>로 포문을 열고, 부조리 개념과 삶의 의미를 특유의 발랄한 문체로 논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 역시 그 괴물처럼 배려 없는 냉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져서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당신을 괴물처럼 쳐다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만장하신 가톨릭교도 앞에서 몽정을 해보라."
이어서 <매트릭스> 편에서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통해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풀을 녹색으로 보는 이유를 논증할 때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아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풀은 녹색으로 보이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녹색이 아닌가? 풀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원자나 분자는 녹색을 띨 수 있는 게 아니다. 풀이 전자기 스펙트럼 일부를 반사할 때 녹색에 대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뇌가 그렇게 보기 때문일까? 뇌는 녹색이 아니다. 관념론자들은 이에 대해 모든 실재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래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나.
<스타워즈> 편에선 '선과 악'을 다뤘다. 플라톤의 시각에서 보면 은하계를 정복하려는 다스 베이더는 "실재성이 결여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니체가 볼 때는 "잠재력 있는 초인"이다. 또 <터미네이터> 편에선 마음과 몸의 관계를 다룬 이원론을 고찰하고, <토탈 리콜> 편에서는 "기억이 곧 사람"이라며 '인격동일성의 문제'를,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서는 '자유의지'를 설명한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5년 <SF철학>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새롭게 번역한 신상규·석기용 교수는 '굳이 다시 번역한 이유'로 "강의 교재로 이 책을 쓰려고 했으나, 기존 번역서가 절판돼 시중에서 찾을 수 없었다"며 "경쾌한 글솜씨가 특징인 저자의 철학 논의를 기존 번역서보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책은 과거와 달리 <반지의 제왕> 편이 추가됐다. 발랄한 문체 덕에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으나, 논증이 지나치게 긴 대목도 있다. 대부분 철학서가 그렇듯 쉽지는 않다. 가벼운 척 묵직한 책이다.
김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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