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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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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수정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2014. 10. 11 조선일보)

마크 롤랜즈 지음ㅣ신상규, 석기용 옮김ㅣ책세상ㅣ452쪽ㅣ1만8000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기계발서의 한 장에서 또는 명사들의 강의에서 한번쯤 접해봤을 문구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니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는 뜻. 그렇지만 정말 나는 이 사회, 이 나라, 이 우주에서도 주인공인가?

이처럼 당연시되는 전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행동과 생각이 나 자신에게는 중요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세상에게는 하등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철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인 ‘부조리(absurdity)’는 이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는 데서 생긴다. 충돌은 필연적으로 질문을 낳는데, 그 질문이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이다.

여기까지는 여느 철학 교양 개론서의 도입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이 책의 차별성은 철학에서 고민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풀어가는 매개로 공상과학 소설(science fiction) 영화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저자가 꺼내든 것도 영화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창조됐고, 낯설고 적대적인 세상으로 내던져졌다. 이런 괴물의 처지가 모든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고 저자는 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와 타인이 평가하는 자신의 가치가 다를 때 ‘부조리’를 느낀다. 그리고 누구나 가능하면 두 관점을 일치시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삶의 여정을 저자는 프랑케슈타인을 통해 반추하게 한다.

주인공이 진짜라고 믿는 세상이 사실은 주입된 공상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서는 ‘인식론(epistemology)’을 이야기한다. 이어 ‘토탈 리콜’ 편에서는 ‘인격동일성의 문제’가 거론된다. 기억이 삭제된 주인공을 이전과 같은 인물로 볼 수 있는가, 반문한다. 범죄의 가능성만으로도 수사 당국에 체포되는 사회를 그린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서는 ‘자유의지 문제’를 설명한다.

골치아파 보이는 철학적 주제를 유명 SF영화의 내용과 접목해, 독자들에게 가볍게 다가가려는 책이다. 직설적이고 때로는 노골적인 지은이의 화법도 일반적인 철학책에 비해 읽기 수월하게 한다.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것들이지만, 미처 보지 않은 독자에게는 재미나 공감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

 

유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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