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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기술'과 더 나은 삶의 가치 실현 가능성 (2014. 8. 25 교수신문)

'향상기술'과 더 나은 삶의 가치 실현 가능성

책을 말하다_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신상규 지음 | 아카넷 | 263쪽 | 18,000원

향상기술의 발전이나 작용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면, 실천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보다 나은 공동체와 인간적 삶의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향상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중에서 크게 인기를 끞지는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영화가 한 편 있었다. 조니 뎁 주연의 「트랜센던스」라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는 인류의 지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의미한다. 2005년 출간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레이 커즈와일(Rey Kurzweil)이 말하는 이른바 특이점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영화 속에서 윌 캐스터(조니 뎁)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천재과학자다. 그는 원숭이 뇌의 기능 및 작용을 컴퓨터에 ‘업로드’ 시킴으로써 자각적 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의 개발에 성공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기술로부터의 혁명적인 독립(Revolutionary Independence from Technology)’을 염원하는 반과학 단체인 RFIT에 의해 피격되고, 그의 연인인 에블린은 그를 살리기 위해 그의 뇌 기능을 컴퓨터에 업로드 한다. 업로드된 윌은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을 장악하고, 향상된 지능을 이용해 장애를 치료하고 죽은 사람의 생명도 살릴 수도 있는 나노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창조의 엔진』에서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가 제안한 나노 어셈블러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윌의 너무나 엄청난 능력에 압도된 에블린은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결국 RFIT에 동조하게 되고 윌과 윌이 구축해 놓은 세계인 브라이트우드의 파괴를 시도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영화 「트랜센덴스」에서 관찰할 수 있는 두 가지 전망 사이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한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시대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인류는 이제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서 자신의 진화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맞춤 진화의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와 같은 급진적 변화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성형 수술을 포함해 프로스테시스나 유전자 조작, 정보기술 등을 통해 우리의 외형적 모습뿐 아니라 존재의 양상이나 방식 자체를 바꿔가고 있다. 우리는 ‘더 영리한, 더 강한, 더 빠른 인간’이 되기를 염원하며, 종교가 아닌 과학을 통해 젊고 건강한 삶이 영원히 계속되는 영생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혹자의 말대로 휴머니즘의 시대가 끝나고, 호모사피엔스를 대체할 새로운 종으로서의 ‘포스트휴먼’이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편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으로 부르는 일련의 운동이 형성돼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의 ‘향상(enhancement)’을 옹호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왜 미래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라는 빌 조이(Bill Joy)의 선언처럼 기술의 발전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이 버티고 있다. 우리는 과연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화를 추구해도 좋은 것일까? 인간은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현명한 존재인가? 이 책은 인간 향상의 현실적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의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이 질문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포스트휴먼으로의 진화라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존중하며 지키고자 했던 의미나 가치의 종말, 더 나아가 인류 자체의 종말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한 어떤 비전에 의해 추동되고 있지 않다. 발전의 배후에 있는 힘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그 체제 속에서 작동하는 경제적 인센티브 및 경쟁 압력이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알고자 하는 욕망이나 발견과 혁신의 희열에 매몰돼, 인간성(humanity)의 존재나 그 의미에 대해 새롭고 강력한 기술들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내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숙고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물학적 종으로서의 인간 종은 자연적 진화의 우연적 산물이며, 그것의 존재는 불가피하지도 당위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종이 유지, 보존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 진화의 선택이라는 질문에 답함에 있어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도전은 결국 ‘인간됨’의 의미, 즉 우리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책은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의 향상에 반대하는 다양한 논증들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그 하나하나를 검토한다. 반대 논증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다.
① 향상 기술의 위험성과 부작용: 인간 향상 기술은 예상치 못한 위험이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며, 종국적으로 인류의 종말을 야기할 수도 있다.
② 사회적 공정성과 자원배분의 우선성: 인간 향상은 평등이나 사회적 정의의 원칙에 위배되며, 계층 격차의 확대나 새로운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향상 기술의 발전에 힘쓰기보다 지금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③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 인간 향상은 인간이 신의 역할을 대신하려 하는 것이다. 인간 향상은 생명이나 자연에 내재된 신성한 가치를 파괴한다.
④ 자율성의 문제: 유전적 조작을 통한 인간 향상은 후손들의 자율성이나 자유를 침해하며, 인간 자유의 조건을 위협한다.
⑤ 인간적 삶의 가치의 훼손: 인간 향상은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 삶의 의미나 진정성, 인간의 존엄성을 포함한 다양한 인간적, 도덕적 가치를 훼손한다.

이러한 논증들을 검토하면서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은 인간의 향상 그 자체에 어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기술 발전의 추세를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인간 향상 기술의 출현을 막을 방법도 없다고 생각된다. 관건은 결국 향상을 통해 우리들이 추구하는 삶이나 사회의 모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경쟁과 효율의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들을 압도하면서 우리 삶의 지배적인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는 시대이다. 향상기술의 발전이나 적용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면, 결국 실천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보다 나은 공동체와 인간적 삶의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향상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향상의 여부가 아니라 향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 사회가 처한 사회적, 윤리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보다 인간적인 새로운 방식의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향상기술의 개발이나 적용을 통제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신상규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철학

필자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확장된 인지와 자아, 인간 향상, 트랜스휴머니스즘, 포스트휴머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로운 종의 진화 로보사피엔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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