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변화, 이해, 통합 - 한국 통일에 대한 독일적 전개 l
디어크 힐베르트
(드레스덴 시 제1부시장))
존경하는 김선욱 한독포럼 대표님, 존경하는 코쉭 독한포럼 대표님, 존경하는 최진욱 통일연구원 원장님,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해마다 독일통일의 날이 돌아오면, 통일이 독일에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상기하게 됩니다. 이 날은 다름 아니라, 무릇 하나여야 할 것이 다시 하나가 된 날입니다.
독일 시인 페르디난트 프라일리히라트가 1848년 독일혁명 당시 외쳤던 구호인 “우리가 인민이다!”는 1990년 10월 3일에 “우리는 하나의 인민이다”라는 문구로 바뀌어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그 사이 독일 역사에서는 약 백 년 반 동안 독일국가의 가사처럼 “단결, 정의, 그리고 자유”를 위한 분투가 계속되어왔습니다.
그런데, 10월 3일은 단순히 변혁의 종결을 뜻하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10월 3일은 분단과 함께 두 개의 적대적 체제로 갈라졌던 독일에 주어진, 새로운 역사적 사명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약 25년 전을 돌아보면, 굳건한 믿음과 과감한 용기가 모여 자유롭고, 하나 되고, 민주적인 독일을 만들어낸 사실에 자부심과 감사함이 교차하는 마음입니다. 1989년, 용기 있는 시민들이 장벽을 허물고, 독재정권을 무너트렸습니다. 당시 정치적 결정권자들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우방의 지지와 참여에 힘입어 결연하고도 신중하게 독일 통일의 길을 닦았습니다.
특히 헬무트 콜 총리가 1989년 12월 19일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 폐허 앞에서 한 연설은 통일의 길에 전환점을 마련해 준 중요한 연설로 기억됩니다.
“역사의 운명이 허락하는 한, 제 목표는 앞으로도 조국의 통일일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확언으로 해석될 이 연설을 들은 시민들은 환호했고, 이 연설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1990년 10월 3일 이래로, 우리 독일인들은, 주거지역의 구분 없이, 남녀 구분 없이, 그리고 동서독 출신 구분 없이 공동으로 통합을 추진해왔습니다.
물론 아직 몇몇 과제들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 통일의 성공과 업적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의 성공과 업적은 독일에서보다 주변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더 알려지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독일은 매우 특별한 국가입니다. 독일이 이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독일과 한국의 유사점은 단지 경제적, 사회국가적 차원을 넘어 유사한 역사적 경험에 이르며, 이는 양국 간 깊은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독일의 한국과의 교류는 단순히 독일이 겪었던 정치적 경험에 대해 한국에 전달하는 것을 넘어, 독일도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전달받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독일은 단순히 한국의 상황에 대해 예측을 내리는 역할이 아니라, 남북 간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통일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한 일입니다.
독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의 분단은 줄곧 감정적이고 긴장된 모습이었습니다. 협력을 모색하는 외교적 의도들은 마치 면도날 위에서 춤추듯 위태로웠습니다. 하지만, 인내심, 냉정함, 헌신, 의지 없이는 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이번 3월 28일 드레스덴 연설에서 바로 이러한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접근을 통한 변화, 비무장화, 화해와 통합, 경제적•사회적 협력, 그리고 지원 등은 전환이라는 중요한 과정에서 눈과 귀를 열어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한국이 화해하고, 협력하고, 단결하고, 결국 통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독일이 한국을 지원하게 해주십시오! 국가적 공동체를 통한 한민족 통합을 이끌어낼, 소위 “박근혜 원칙”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에 우리가 함께 앞장섭시다!
동독이 붕괴될 당시, 그것으로 독일의 국가적, 경제적, 사회적 통일이 완성된 것은 단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즉, 그 순간부터 통일을 위한 도전은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가 1989년 11월 동서독의 점진적 접근을 위한 10개항 계획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여러 가지 상황이 난무했습니다. 서독으로의 동독주민 대규모 이동으로 인해, 서독 마르크를 동독에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화폐•경제•사회동맹이 시급히 제정되어 1990년 7월에 발효되어야 했습니다. 이어서 1990년 8월에는 통일조약이 체결됐으며, 한 달 뒤인 9월에는 동서독과 2차대전 승전국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참여하는 소위 “2+4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들이 인정되고 나서야 독일은 1990년 10월 3일에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연방대통령이었던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는 이 역사적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어느 누구로부터 강요된 것이 아니라, 평화롭게 합의된 것이다. 독일 통일은 유럽 시민들의 자유, 그리고 유럽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목표로 하는 전(全)유럽역사적 과정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한국에서도 독일 통일과 같은 과정이 반복될 수 있을까?“
물론 독일 통일 과정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혁은 너무나 다양하고 역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한국에 1:1로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독일처럼 한국도 아마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며, 힘든 일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독일 통일 과정에서 겪은 오류와 문제점 중 현재 한국의 통일 정책에 분명 도움이 될 만 한 점은 몇 가지 있습니다.
• 구조적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 공산권 지역에 축적된 자본규모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 대규모의 주민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통일이 될 경우 2백만에서 7백만 명의 북쪽 주민이 일자리를 찾으러 남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 북한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단절되었던 상황을 고려할 때, 사회적 남북통합은 엄청난 도전과제로 작용할 것입니다. 북쪽 주민들이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및 재교육에 대규모로 투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개혁이 진행되고, 기업 친화적이며 법치국가적 환경이 조성된 후에는 북쪽 지역이 수많은 성장가능성을 나타날 수 있으며, 오히려 투자요충지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필요한 대북한 투자와 기술이전에는 남한과 국제사회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본 활용의 개선, 규제완화, 조세혜택, 도시화 등의 요소는 생산력 증가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이 해결할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인적자원의 파괴와 남쪽으로의 주민이동이 될 것입니다. 작센 주의 주도(州都)인 드레스덴 또한 통일 직후 이러한 충격을 감내한 바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90년대 초, 젊은 전문 인력이 대거 이동하면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독주민들의 생계수단, 그리고 직업경력이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이러한 현상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동독 주민들이 변화하겠다는 적극적 자세를 가졌기에, 그들은 새로운 출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재건 계획, 구조개혁, 인력전문화, 기술력 향상, 미래 전문인력 부족에 대처한 교육투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추후 이루어진 인구변화 대응 인프라 개선 등 과정들은 드레스덴이 오늘날 준비된 미래를 갖게 된 결정적 원동력입니다.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저는 한국이 조만간 평화롭고 자유로운 통일을 이룩하게 되어서, 제가 들려드린 제안들을 활용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돌아오는 10월, 저는 한국을 다시금 방문하여 뜻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10월 1일, 한스 자이델 재단, 서울대학교, 드레스덴 시가 주최하는 “독일 평화혁명 및 통일 25주년” 토론회가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0월 2일에는 주한독일대사관저에서 열리는 만찬을 통해 보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라이프치히 시에서 10월 9일 열리는 1989년 평화혁명 추모행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 행사에 오시면, 평화혁명 25주년을 기념하여 도시 중심부 구역에 설치된 매혹적인 빛의 축제 또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시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한민족의 통합은 절대 미루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과제입니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준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부문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북한 주민들 또한 통일로 인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결핍이나 희생을 감내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남북한 사회전반에는 통일을 원한다는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청장년 세대들에게는 통일을 통해 한국 땅에서 “범세계적 역사”가 실현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 강조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통일이란 하나 된 영토, 하나 된 제도, 하나 된 국가, 하나 된 삶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민족의 번영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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