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1960275
일 자
15.05.11
조회수
1412
글쓴이
개설관리자
제목 : 보령댐 수몰예정지역내 보령용수리 2호요지 발굴조사 保寧댐水沒豫定地域內保寧龍水里2號窯址發掘調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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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995-07 ~ 19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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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부서 학예실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산 19-1 / 시대: 고려시대 말 ~ 조선시대 초
용수리 2호 가마는 1호가마에서 300m 떨어진 동고서저東高西底의 사면斜面에 서향으로 있으며 남쪽으로는 양각산羊角山을 마주하고 천방사千房寺 터가 웅천천熊川川을 건너 서로 마주보고 있다.
용수리2호 가마터에서는 2기의 가마가 조사되었으며 용수리1호 가마와 같은 양상으로 북쪽가마는 총길이 25m에 폭은 1.1~1.2m이며 모래와 진흙을 깔아 만든 무단등요無段登窯로 지상토축地上土築가마이다. 소성실 최상단에는 1호요지와 같이 바닥을 낮추고 돌과 진흙으로 쌓아 연실煙室을 만들어 열과 연기를 배출하기 전에 열과 연기를 가두어 가마내 온도를 유지하였다. 남쪽 가마는 현존길이가 약 5m만 남아있다.
생산품은 무문無文과 상감象嵌, 인화문印畵文의 청자계靑瓷系와 백토분장계白土粉粧系로 대별되며 청자계의 기종은 대접, 접시, 잔, 완碗, 합, 항아리, 마상배馬上杯, 장군 등이며 대접, 접시가 주류를 이룬다. 청자계 도자기의 상감, 인화문 청자에서 ‘庫’(고), ‘長’(장), ‘興’(흥) 자가 한자씩 선각線刻 또는 인각印刻으로 백상감되었으며 관사명 官司名으로 표기한 것이기보다는 수요처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백토분장계 도자기는 청자계와 판이하게 달라 받침은 모래받침이며 대호大壺의 경우 넙적전에 각형파수角形把手가 달리고 토기성형방법으로 제작하였으며 접시의 경우 청자계 접시와 형태가 완전히 달라 청자류와는 별개로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1. 梨花女子大學校博物館, 「龍水里 1號·2號窯址 發掘調査報告」, 『保寧댐
水沒地區 發掘調査 報告③ 陶窯址 發掘調査報告』, 이화여자대학교박물
관․한국수자원공사, 1996. 2
보고서: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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