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일 원로 언론인 테오 좀머 "분단돼 있는 한 접촉 유지해야"
대표적 지한파…"인내심 갖고 갑자기 닥칠 통일을 준비하라"
통일의식 중요성 강조…"메르켈 폭넓은 인기로 4기 연임 가능" 예측도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독일의 대표적인 지한파 원로 언론인 테오 좀머(85)를 만났다.
제14차 한독포럼 행사가 한창이던 지난 17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로스토크에서였다.
만남은 이날 오전 연합뉴스의 요청을 그가 즉각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포럼 행사장인 호텔 복도 소파에 걸터앉아 시작한 인터뷰는 30분을 넘겼다. 장소의 형식 파괴에 아랑곳 않는 실용적 태도나, 명쾌한 논리적 답변이나 그는 영락없는 깊은 내공의 저널리스트였다.
앉자마자 독일 정치에 밝은 그에게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미래를 물었다. 주간지 디 차이트 무임소 편집인(editor-at-large) 직함의 그는 정치와 국제관계 부문에 주로 관여한다. 돌아온 말은 간명했다.
"그는 2017년에도 총리 후보로 나올 겁니다. 그리고 내가 볼 때엔 또 됩니다."
왜냐고 질문했다.
"인기가 매우 높지요. 사람들은 그의 정책과 전략에 동의합니다. 아직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지금 그가 속한 집권 다수당 기독민주당(CDU)에는 다른 대안 인물이 없습니다."
그래도 메르켈 외 그 당에 다른 인물은 없느냐고 했더니 두 사람을 꼽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과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이었다. 그러나 크게 무게를 두진 않았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에 대해서는 일을 잘 하고 야망도 있지만, 메르켈처럼 폭넓은 인기는 없다고 첨언했다.
좀머는 그리스 사태의 전개 양상이나 우크라이나 위기 대응이 관건이라고 했다. 메르켈이 상식적인 길을 추구하지만, 일이 꼬인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메르켈이 4기 연속 집권을 이어간다면 연정 상대당은 지금의 대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이나 녹색당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메르켈로선 자민당이 상대가 되기를 원할 수 있지만 현재 지지율로는 그 조합은 과반이 안 된다고 했다. 녹색당도 제 갈 길을 고수한다면 파트너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각 정당의 지지율은 CDU·기독사회당(CSU)연합 42%, SPD 24%, 녹색당 9%, 좌파당 9%, 자민당 4% 안팎이다.
메르켈이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과 더불어 그리스를 너무 거칠게 다루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치프라스(그리스 총리)는 조건없이 돈(구제금융)을 받으라는 민주적 권한 위임을 국민들로부터 받았고, 메르켈은 조건없이 돈을 주면 안 된다는 민주권 권한 위임을 받았다"고 했다. 메르켈의 그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두 지도자 모두 합리적이라 일이 풀릴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부채 상환기간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춰주면 그리스가 40∼50년에 걸쳐 갚을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좀머는 그러나 그리스가 성장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해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독일 집권 다수당의 3차 구제금융 지원 반대 의원 수가 100명에서 50명 선으로 줄었다며 결국 3차 구제금융 지원은 독일도 '오케이'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그러나 문제는 4차 구제금융이라며 크게 웃었다.
3차 구제금융이 3개년 프로그램이라면, 그리스 위기를 3년 미룬 것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말에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 정부가 (구제금융 받는 대가로 한) 약속들을 잘 지키는지 채권단이 모니터하겠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테오 좀머의 1977년 모습(서울=연합뉴스DB)최규하 국무총리는 17일 상오 서독 짜이트 신문 편집국장 테오 좀머 박사를 접견하고 환담했다.//1977.1.17(서울=연합뉴스)//*당시 사진설명
이 말을 받아 곧바로 '그리스 정부가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느냐'고 했더니 "치프라스의 말이 매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할만하다"고 주장하고 치프라스 총리로선 국정을 위해 연정 파트너뿐 아니라 반대파(야당)도 필요하다는 대답으로 갈음했다.
남북관계 돌파구로 화제를 돌렸다. 그랬더니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거론하면서 분단되어 있는 한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작은 발걸음' 정책이 절실하다는 얘기였다.
이 정책에 맞물려 동, 서독 간에는 시장(市長) 접촉, 전화 통화, 상대 TV 시청 같은 것들이 가능했다고 했다.
좀머는 이 대목에서 1988년 통계치를 안 보고 읊었다. 그해 기준으로 동, 서독간 교역 규모를 180억 마르크로 기억했다. 서독인 600만이 동독을 찾고 500만 동독인이 서독을 찾았다고도 했다.
좀머는 접촉 지속의 산물을 열거하고는 북한이 자그마한 (개선)조치라도 할 수 있게끔 압력을 가해야 하고 서로 하나의 국가라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된다며 통일 의식도 강조했다.
그는 "조언을 한다면 '인내심을 가져라, 그리고 동시에 준비하라! 갑자기 닥칠지 모를 통일에 대비하여'라고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의견을 풀었다. 그는 "나는 햇볕정책을 좋아한다"면서 "비록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게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좀머는 1990년 독일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언급했다. 좀머는 고르바초프가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가져온 동독인들의 라이프치히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면 모든 게 끝났다"라고 했다.
좀머는 역사학, 정치학, 국제관계학을 두루 익히고 튀빙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 차이트의 발행인으로서 한국과 독일의 전문가 논의틀인 한독포럼 공동의장도 지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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