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기조세션 (한독 문화교류 현황과 전망) 발제문
한-독 문화교류 현황과 전망
한충희 외교부 문화외교국장
[ 머리말 ]
독일은 한국인의 매일의 삶에 매우 깊숙이 들어와 있다. 다만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할 뿐이며, 한국과 독일간의 관계는 자동차 사이드미러에‘거울에 비치는 사물들은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깝습니다’(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매우 가깝다.
한국인들에게 BRAUN 면도기와 휴고보스 슈트, 아이그너 악세서리, Mercedes와 BMW는 명품의 이미지이며, 휘슬러 압력밥솥, Henkel 쌍둥이 칼, AEG 가전제품은 한국 주부들의 선호품이다. 아르바이트, 알레르기와 같은 독일어는 이미 우리말이 되어 버렸고, 칸트, 헤겔, 괴테 등 위대한 사상가와 그림 형제, 헤르만 헤세와 같은 작가들, 바흐, 베토벤, 브람스 등 음악가들은 늘 한국인들에게 사색과 즐거움을 주었다. 1945년 해방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영어 이외의 제2외국어는 독일어가 압도적이었다.
한국인들은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비교하고 분단 상황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한 것 등에서 독일과 많은 동질감을 느낀다.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이 된 양국민들의 근면함과 성실함 그리고 조직적인 성격도 비슷해 보인다. 독일에서 ‘공동체’가 강조되고 ‘Vertrauen’이라는 ‘신뢰’가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도 한국과 유사하다. 한국의 법체계가 독일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문화와 사회정서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한국인에게 독일은 신뢰감 있는 품질과 탁월한 아이디어의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 있는 나라(‘아이디어의 나라(Land der Ideen)’,‘German engineering’)라는 이미지를 주는데, 이것이 앞으로 한국도 추구하고자 하는 국가이미지이며 이미 삼성, LG, 현대/기아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좋은 이미지를 잡아가고 있다.
양국은 1883년 통상우호항해조약 체결 이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분야에서 관계가 크게 발전하여 왔다. 독일은 우리의 5대 교역국이자 EU회원국 중 1위의 교역대상국이다. 지금은 학술, 음악, 미술, 공연, 교육 등 문화 전반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2013.5월 BBC의 국가이미지 조사는 독일이 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25개국 조사대상국중 제일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이 양국간 문화교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의 경제 발전과 국제 위상에 비해 아직 미흡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독 수교 130주년이자 파독 광부 50주년을 맞는 해에 문화교류의 현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 한독 문화교류의 역사와 현황 ]
한국과 독일이 인류문화발달에 공통으로 기여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이다. 한국은 1377년 금속활자본‘직지’를, 독일은 1455년 금속활자본‘구텐베르크 성서’를 발간하였는데, 금속활자의 발명은 지식정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인 문화사적 사건이라고 평가된다.
양국간의 문화적 접촉의 시초를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지만, 통상 1644년 조선의 16대 임금인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와 독일인 신부 아담 샬(Adam Schall)과의 만남을 효시로 들고 있다.
그러나, 문헌상 최초의 문화적 접촉은 독일 프로이센 출신 선교사의 한국 방문 이었다. 1832년 개신교 선교사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독일인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는 충청도 고대도에 한 달간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고, 주민들에게 감자 심는 법, 포도주 제조법 등을 전파하였으며, 중국으로 돌아가 선교잡지‘Chinese Repository'에 한국어에 대한 논문인‘On the Corean Language'를 발표하였다. 귀츨라프는 성경의 한글 번역에도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서양에 한글을 최초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한 인물이 되었다. 한편, 독일 베네딕트파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가 1911년과 1914년, 두 차례 한국을 여행하고 지은 여행기가 ’고요한 아침(Morning Calm)의 나라’였는데 이것은 한국의 이미지를 그간 가장 오랫동안 묘사해온 표현이었다. 물론 지금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고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이 되었지만 말이다.
1963년 이후 1만명의 한국 간호사와 8천명의 광부가 파견되었는데 이들이 비록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갔지만 양국민간의 최초의 대규모 접촉이었고, 문화적으로도 이들과 그 후손은 지금의 한·독 관계의 주춧돌이라고 하겠다.
1970년에는 문화협정이 체결되고 문화공동위가 설치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독일내 한국학 연구는 국제교류재단 등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현재 20여개 대학과 단체, 연구소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확대되어야 한다. 한국어도 독일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정식 채택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언어 준비를 통하여 차세대간 교류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한국내 독일어 학습과 독일 문학 등 독일학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으로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서 꾸준히 진행 중이나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내 괴테 인스티튜트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독일문화에 대한 접근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독일내 한국인 유학생은 5천명이 넘으며 100여개의 양국 대학간 파트너십이 체결되어 있다. 독일내 4만여명의 한인 코뮤니티는 유럽 최대로서 초기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후손을 비롯 유학생, 기업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한국의 많은 음악 유학생들이 독일 주요도시에서 교육받거나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유럽의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있다. 베를린이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함에 따라, 한국의 많은 미술가들이 퀠른아트페어, 도구멘타 등 독일내 유명 미술박람회나 전시회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독일 미술가들과 교류하고 있다.
베를린은 특히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는 도시인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고, 1961년에는 한국영화‘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었다. 한국에서 장기 히트공연중인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바로 작년에 작고하신 독일인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작품이다.
독일의 공연예술분야와의 협력, 베를린 영화제 등 영화분야 교류도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청소년을 중심으로 많은 독일인들이‘한류’로 불리는 K-pop 등 한국 대중문화를 좋아하고 한국어 배우기에도 열심을 내고 있다. 특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012년 프랑크푸르트 개최 MTV 유럽뮤직 어워드에서 베스트 비디오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에 한국대중음악을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분데스리가의 1호 한국선수였던 차붐, 그리고 지금은 손흥민, 지동원 등이 축구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다.
작년 5월 미국의 외교지 ‘Foreign Policy’는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4개국을 GUTS(독일, 미국, 터키, 한국)라고 소개하였는데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한독 양국의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 최근 국제환경의 변화와 한독 문화교류 방향 및 전망 ]
양국간 이러한 교류협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내 독일어 학습 열기 및 한국인들의 독일에 대한 관심은 다소 주춤한 상태이며, 앞서 언급한 BBC 국가이미지 조사에서 보듯이 아직도 독일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쌍방향적인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적극 펼쳐 Soft Power를 통해 상대국 국민들에게 자국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반시민, 학계, 언론계, NGO, 기업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독일내 우리 동포들의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한 다양하고 새로운 양국의 문화콘텐츠가 서로 상대방 국가에 더 소개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쌍방향 교류’는 한독간 문화.공공 외교의 핵심원칙이 될 것이다.
올해 개최하는 수교기념 사업중 9월 베를린에서 지휘자 금난새씨가 기획하는 한독 공동 오케스트라 협연연주가 이러한 쌍방향 교류에 부합하며, 앞으로 이러한 차세대를 중심으로 한 양국 합동 연주가 잘 정착하고 정례화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양국이 상대 국민에게만 문화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혼성팀을 구성하여 중앙아시아와 같은 양국 모두와 가까운 제3세계에 가서 그들과 함께 문화를 공유하고 즐기고 소통하는 ‘제3국과의 문화공유 프로그램’도 추진하기 바란다.
독일이 유럽에서 역동적이고 문화수용성이 좋으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많은 실험정신과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국가라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그러한 다양하고 다이내믹하고 창조적인 문화 공급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두 나라가 협력한다면 세계 문화발전에 좋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통독과정에 있어서의 문화의 역할 및 한국에의 함의 ]
한편, 통독과정에서 문화의 역할에 대한 독일의 경험이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다. 동서독간 지속적인 문화교류와 서독 문화의 동독 국민들에 대한 영향력은 통독을 더욱 앞당기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국민들 간의 문화통합을 어떻게 추진하였는지에 대해서도 경험을 듣기를 희망한다.
또한, 독일은 남북한 모두와 문화교류를 하는 드문 국가로서, 2002년 융에 도이치필하모니의 평양 공연, 2005년 북한에서의 음악 강습 실시, 2012년 뮌헨실내악단의 평양음악학원과의 합동공연 등이 있었다. 북한과의 문화교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한 문화교류 문제에도 한국 측에 좋은 조언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 맺음말 ]
독일의 여러 사상과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모범은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여성 지도자까지 공통점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 독일이 성취한 것 중 한국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바로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이다.
한독간의 문화교류는 이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 즉 이제는 양국이 파트너의 관계로서 문화적으로 협력하여 양자 간의 문화교류 증진을 넘어서서 제3국이나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단계까지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창의적으로 융합하고, 다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수용성을 가지며, 역동적인 경제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문화 소외지역에 같이 아웃리치하는 등, 문화와 개발, 문화와 소통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이를 통해 지구촌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데 양국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양국 국민들이 더욱 긴밀히 문화교류와 교제를 하여 서로 신뢰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문화.공공외교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독일시인 괴테가 ‘서동시집’(West-östlicher Diwan)에서‘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바그다드도 멀지 않다(Baghdad is not remote for a lover.)'라고 했듯이, 베를린과 서울도 서로 멀지 않게 느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양국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양국관계는 자동차 거울에 비친 것보다 훨씬 더 가깝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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