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No.
11563976
Date
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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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협력연구소
기조세션2_한국_윤영관

한독 수교 130과거와 미래

                                                     윤영관 (서울대 교수,

Free University of Berlin 방문교수)

 

한국은 구한말 서양의 근대국가질서를 받아들인 후 수많은 국가들과 관계를 수립해왔다.  그러한 국가관계들은 대부분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2중적 관계들이 많았다.  특히 한반도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그러나 한독관계 130년을 살펴보면 “()”의 측면은 별로 보이지 않고 “()”의 측면이 두드러지는 몇몇 안 되는 국가관계인 것 같다.  특히 독일은 한국이 지난 130년간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시대적 과제를 안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올 때 진심 어린 도움의 손길과 영감을 제공해주는 나라였다.    

최초의 중요한 한국인-독일인과의 만남은 조선왕조 16대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병자호란의 결과로 청나라에 볼모로 와있었을 때 그곳에 와있던 독일인 신부 요하네스 아담 샬( Johannes Adam Shall von Bell)과 이루어졌다.  이 둘은 1644년 경 북경에서 만나 깊은 교류를 나누었고 샬 신부는 천주교 교리뿐 아니라 당시 선진 서양 문물도 함께 소현세자에게 전해주었다.  만일 소현세자가 귀국 후 70일만에 죽지 않고 오래 살아 당시 지나치게 강고해지기 시작했던 유교적 세계관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같은 질문은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독수호통상조약이 1882 6 30일 조인된 이후 지난 130년 간의 한독관계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1기는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양국 외교관계가 단절된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의 한독 관계에서 가장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인물은 물론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穆麟德)이다.  1882 12월에 한국에 와서 3년간 고종에게 자문했던 그는 열강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한반도를 노리고 있을 때 조선의 개혁을 위해 진정 어린 자세로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서양 근대국가질서로의 편입과정에서 제국주의 열강에 희생되지 않고 어떻게 내정개혁과 기민한 외교를 통해 독립국가로 자립할 것인가가 당시의 시대적 과제였다.  그는 그러한 과제를 안고 고민하던 한국인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아파했던 독일인이었다.

2기는 1955 12 1일 양국이 상호 국가승인을 통해 완전히 외교관계가 재수립된 이후 1990 10 3일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의 냉전기 분단시대의 한독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양국이 냉전의 최첨단지역으로 분단을 경험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관계이자 경제적 측면에서는 양국이 동시에 『라인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시기였다.  1964 12월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에르하르트 총리는 “분단국으로서는 경제번영만이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입니다라고 독일 경제부흥의 요지를 들려주며 심지어 한국에 가서 경제고문을 맡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1] 이 짧은 한마디 속에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앞에 두고 양국 정부가 나눈 깊은 우의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또 다른 시대적 과제를 앞에 놓고서 벌어진 여러 정치적 사건들에서는 양국 정부간의 미묘한 갈등도 없지 않았다.     

한독관계 제3기는 1990년 독일통일 이후의 시기이다.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레짐 붕괴라는 세기적 전환과정에서 콜 총리의 기민한 외교로 독일은 통일을 달성했다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냉전 종결이라는 세계사의 흐름과는 달리 분단갈등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독일의 통일 경험과 그 후의 상황전개에서 우리는 무엇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아데나워 총리로부터 시작된 서방정책과 빌리 브란트 총리로부터 시작된 동방정책이 절묘하게 상호 보완 융합되어 통일을 이루어낸 과정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제3기의 한독관계 시대특히 2010년대의 한독관계에서 한국인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  그것은 어떻게 좀더 “인간적인 시장경제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문제이다.[2]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심화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과 열악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팽배해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2차대전이후 성장과 복지라는 양대 목표를 달성해낸 독일의 『사회적시장경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독일은 『어젠다2010』을 내세운 슈뢰더 개혁의 길을 최근 걸었지만 독일경제의 밑바탕에 흐르는 공동체 정신에 한국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시대 시대마다 한독관계는 당면한 과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동지적 우호관계로 점철되어왔다.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그러한 관계가 더욱 긴밀하게 지속되고 그 결과 한반도의 통일성장과 복지의 동시 달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통일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허브국가가 되고 독일이 유럽의 번영과 통합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어 양국이 새로운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1] 최종고한강에서 『라인강까지한독관계사 (Vom Han vis zum Rhein) (서울유로서적, 2005), p.280.

[2] 독일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Wilhelm Röpke, A Humane Economy: The Social Framework of the Free Market (South Bend, Indiana: Gateway Editions, Ltd., 1960)의 저서 제목에서 착안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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